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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UR]재택근무 끝, 다시 열린 '9호선 헬게이트'…"혼잡도 179%, 이어폰 떨어지면 끝장"
'지옥철' 9호선 체험 르포
26일 오전 출근길 서울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 승강장 모습. 전동차 타기를 포기한 승객이 다른 승객을 안으로 밀어주고 있다. 이원율 기자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친구는 출근이 무섭다고 했다. 상사가 못살게 구느냐고 물어보니 아니란다. 그가 지목한 공포의 대상은 출근길 지하철이었다.

정확히는 평일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9호선 안 전동차였다. 특히 '노량진→동작→고속터미널' 구간에선 현기증을 느낀 적도 몇 차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 말이야. 빨리 가도 많고 늦게 가도 많아. 그냥 그쯤이면 항상 많아"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직접 그 시간에 그 구간을 타봤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특히 출발하는 전동차에서 튕겨 나와 스크린도어(안전문)와 충돌하는 모습을 직접 봤을 때는 간담이 서늘했다.

타기도 전 이마엔 땀 '또르르'…'삑' '삑' 끝없는 개찰구 소리 긴장감↑
26일 오전 출근길 서울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 승강장 모습. 이원율 기자

26일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1·9호선 노량진역 안. 9호선이 들어오는 곳에서 급행열차를 기다렸다. 동작 방면이었다. 전동차 출입구는 1-1번부터 끝 번호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긴 줄에는 20명도 넘게 서 있었다. 백팩 혹은 크로스백을 멘 직장인이 다수였다. 교복 하복 셔츠를 입은 중·고등학생, 짐을 든 노인 등도 가끔 나타났다.

이들은 이어폰을 낀 채 말없이 휴대폰을 봤다. 벌써 땀에 젖은 직장인도 있었다. 내 앞에 선 한 직장인의 목덜미에서도 굵은 땀줄기가 또르르 흘렀다. 사람은 그냥 가득한 게 아니었다. 질서 있게 두 줄로 선 사람들은 더 이상 줄을 설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옆으로 정처 없이 퍼지기도 했다. "이쪽은 어느 출입구 줄이에요?"라고 묻는 이도 종종 보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바로 위층 개찰구에서 들리는 '삑', '삑' 소리가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교통카드를 찍는 소리였다. 곧 계단을 타고 이곳으로 내려올 사람들이었다.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다. 상황을 모르는 이였다면 미디어 효과음의 '반복 재생'인 줄 알았을 것이다. 직장인 김모(41) 씨에게 "늘 이런가요?"라고 물었다. 그는 "다들 고생이시죠. 원래 이래요. 아니,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되고 재택근무까지 풀리면서 더 많아졌죠"라고 덤덤히 대답했다.

26일 오전 출근길 서울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 승강장 모습. 이원율 기자

이때 "급행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어, 잠깐만요. 조금 있다가 바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뒤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출정하는 장수처럼 목소리가 비장했다. 열차가 보였다. 사람들은 움찔했다. 줄 간격이 좁아졌다. 문이 열렸다. 먼저 내릴 이가 다 내렸다.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전동차의 배는 여전히 빵빵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갔다. 들어가는 게 아니라 뛰어드는 것 같았다. 동참했다. 몸을 내던졌다. 안에서는 "좀 더 들어갑시다!"와 "누가 이렇게 밀어대!"의 싸움이 벌어졌다. "머리, 머리카락이 끼었어요!"와 "이어폰이 떨어졌어요!" 등 비명도 들려왔다. "아이씨…" 곳곳에선 욕설 비슷한 말도 터져 나왔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몸을 뺐다. 세 번째 순서로 비교적 앞줄에 서 있었지만 타지 못했다.

"머리, 머리카락 끼었어요!" "이어폰 떨어졌어요!"…안전문 충돌 승객 '아찔'
26일 오전 출근길 서울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 승강장 모습. 이원율 기자

그렇게 전동차 문이 닫히려고 할 때쯤이었다. 급히 뛰어온 40대로 보이는 한 승객이 말 그대로 전동차에 몸을 내던졌다. 전동차는 그 승객까지 대롱대롱 매단 채 문을 닫고 가려다가 멈췄다. 문이 다시 열렸다. 그 승객은 튕겨 나와 안전문과 충돌했다. 그 승객은 굴하지 않고 다시 전동차로 돌진했다. 보다 못해 일찌감치 타기를 포기했던 다른 이가 그를 전동차 안으로 쑥 밀어줬다. 1990년 중반에 사라진, 승객을 전동차에 밀어 넣어주는 '푸시맨(Push-man)'이 떠올랐다. 그렇게 전동차는 떠났다. 조금 있다 전화하겠다고 한 그 남성도 타는 데 실패한 듯했다. 그는 초조해 보였다.

8시20분께. 곧이어 찾아온 두 번째 급행열차에는 오를 수 있었다. 전동차 안에선 팔 하나 제대로 펼 수 없었다. 누군가 출근길 9호선 전동차를 타면 "몸에 힘을 빼도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고 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붕 떠서 가는 느낌이라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실감했다. 온몸이 꽉 낀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넘어지고 싶어도 넘어질 수 없었다. 내 왼쪽에 선 사람은 휴대폰 앱을 눌러 음식점을 검색했다. 이날 점심 메뉴를 고르는 듯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휴대폰으로 축구 경기를 봤다. 축구선수 손흥민의 얼굴이 보였다. 다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었다. 너무 가까이 있어 안 볼 수가 없었다(바로 시선을 돌리기는 했다).

내부 온도는 높았다. 사람들은 연신 땀을 닦았다. 이러한 난리 통 속에서도 대부분 사람은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맨 뒤에서 들리는 "나갈게요!"라는 말에 앞뒤로 빠지고, 내리는 사람은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내리는 식이었다.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렸다. 사람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갇힌 채 정처 없이 9호선 길을 따라 떠돌 뻔했다.

"헬게이트 다시 열렸다…힘빼도 안 넘어지는 빽빽함, 공황 느낀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매일 오전 지하철 9호선 당산역에서 봉은사역으로 향한다는 최모(36) 씨는 "일주일에 2~3번씩은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말다툼을 하는 것 같다"며 "신경통이 재발했다. 정말 출퇴근 하나 때문에 다시 재택(근무)을 하고 싶다. '헬게이트'가 다시 열린 느낌"이라고 했다. 최근 9호선을 타고 출근하다 공황(恐慌)을 느꼈다는 김모(55) 씨는 "꽉 막힌 전동차 안을 비집고 들어가는 꿈까지 꿀 정도"라고 했다.

철도통계연보 '도시철도 수송실적(2020)'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노선 중 최고 혼잡도를 기록하는 시간·구간은 오전 8시 9호선 노량진→동작이다. 혼잡도는 179%다.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승차 정원 대비 탑승객 수로 혼잡도를 계산한다. 전동차 한 칸에 160명이 탔을 때 혼잡도를 100%로 한다. 통상 혼잡도가 170% 이상이면 사람들 간 몸이 밀착돼 팔을 들 수 없는 상황으로 간주한다. 혼잡도 179%는 전동차 한 칸에 160명보다 126명 더 많은 286명 가량이 탔다는 뜻이다. 2020년은 코로나19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던 때다. 하나둘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했을 시기다. 올해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고, 전면적인 재택근무 해제 조치가 이뤄지면 혼잡도는 더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직장인 장모(42) 씨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전동차 한칸 160명 정원에 286명 탑승…개선公約→空約 안 되길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1월7일 오전 2량짜리 꼬마열차로 혼잡도로 악명 높은 김포도시철도(김포골드라인)를 타고 여의도 당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

지하철 9호선 측도 '지옥철'의 오명을 벗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9호선은 지난 2019년 '9호선 혼잡도 개선을 위한 전동차 증편 추진계획'을 세운 뒤 차량 증편 등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여당인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측, 제1야당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측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양측의 관계자는 "시민 안전에 중점을 두고 분산 대책을 고안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지옥철'을 체험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지난 1월7일 오전 김포골드라인(김포도시철도)과 지하철 9호선에 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확대 공약을 발표했다. 이 또한 승객 분산 효과를 염두에 둔 공약으로 해석됐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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