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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칼럼] 위기는 침묵 속에 온다

조선 현종 재위기간인 1670~1671년 우리나라에는 역사상 전대미문의 기아 사태가 발생했다. 냉해, 수해 등 자연재해로 조선 전체에 흉작이 들고 곡물 생산이 급감하면서 전국에서 약 100만명이 사망했다. 2년간에 걸친 이 사태는 경신년과 신해년의 앞글자를 따서 ‘경신대기근’이라 불린다.

350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 앞에는 자연재해와 작황부진이라는 난제가 놓여 있다. 주범은 온실가스다. 온실가스 증가는 지구 온도와 해수면 높이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태풍과 폭염, 집중호우 등을 일으킨다. 이러한 이상 기후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농업생산성이 하락하고 수급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과 브라질에서 폭염과 가뭄으로 옥수수 생산량이 급감했다. 프랑스에서는 포도 산지가 냉해 피해로 와인 생산량이 27%나 감소했다. 우리나라도 해마다 봄 개화기가 앞당겨지고, 4월 이후에 갑자기 한파가 찾아오는 등 이상 기후 증가로 과일과 채소류의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근래 잦은 산불도 기후 문제와 연관이 깊다. 온난화와 미세먼지 등으로 꿀벌 개체 수도 크게 줄고 있다. 벌의 수분활동이 없으면 농작물 생산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가 바로 식량위기인 것이다.

기후위기의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은 전 세계적으로 연간 524억t에 이른다. 화석원료에 의한 배출량이 크지만 먹거리에서 발생하는 비중도 적지 않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먹거리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체의 31%에 달한다.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배출하는 탄소량은 33억t이나 된다. 먹거리 온실가스가 지속 가능한 먹거리를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먹거리 생산부터 가공, 유통, 소비까지 전 과정에 걸쳐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실행에 전 세계가 함께 나서야 한다. 식생활 개선은 누구나 매일 손쉽게 할 수 있는 탄소중립 실천이다. 저탄소 친환경 농산물 소비를 늘리고 로컬푸드 이용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버려지는 음식물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식생활을 계속한다면 먹거리 부족으로 인류가 기아에 직면할 수 있다는 공동체 위기의식을 가져야 할 때다.

물론 개개인의 노력에만 의존할 수 없다. 기후위기로 먹거리 수급은 불안정해지는데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오는 2050년 세계 인구가 97억명에 달하면 지금보다 1.7배의 식량이 필요하다. 늘어나는 수요만큼 생산량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돈이 있어도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나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국경이 봉쇄되면 식량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는 치명적이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약 20% 수준이며, 사료용 소비를 포함한 식량자급률도 45%대에 불과하다. 부족한 절반 이상의 식량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 전염병, 전쟁, 인구증가 등에 대비해 안정적인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식량안보의 시작이다. 자급률이 낮은 밀·콩의 안정적 생산 기반을 강화하고, 공공 비축을 통해 식량자급률을 점진적으로 높여나가야 한다. 식량위기는 국민의 일상을 위협하는 안보의 문제다. 경제성을 따져서는 식량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방안보에 경제성을 따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기는 항상 침묵 속에서 온다. 기후위기와 식량위기는 지금도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바로 행동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고난을 남기게 될 것이다.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osky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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