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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읽는 신간]‘연보는 부록’ 깬 ‘능호관 이인상 연보’외

▶능호관 이인상 연보(박희병 지음, 돌베개)=한 인간이 한평생 해온 주요 일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연보는 연구서에서 뒷방 신세다.책 뒤에 부록 형태로 붙는 게 일반적이다. 지난 20년 간 능호관 이인상(1710~1760)을 연구해온 박희병 교수는 이에 보란듯 600쪽에 달하는 묵직한 책 한 권으로 이인상의 연보를 작성했다. 7년간 작업한 이인상 연보는 능호관의 외적 행위는 물론 감정 등 내면세계를 시문과 편지글을 통해 다각적으로 담아내 전인적 보고서라 힐 만하다. 저자는 시인이자 산문가, 화가이자, 서예가, 사상인이었던 이인상의 다양한 면모를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가 남긴 간찰과 산문, 시 등을 많이 인용했다. 이인상은 서얼로 신분적 차별에 대한 불만과 서러움을 시문에 기댔지만 폭넓은 교유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저자는 또한 이인상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살피며, 특히 아내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읽어낸다. 아내에 대한 존중과 그녀의 지적 능력에 대한 존경이 남달랐던 점에 주목, 이인상 집안의 여인들, 즉 어머니를 비롯, 딸, 며느리 등에 대해서도 충실히 담아냈다. 이는 주로 남성 위주로 기술해온 종전의 연보들과 젠더적 시각에서 차이가 난다. 또한 이인상이 경도된 도가 사상이 서얼 출신인 그의 정체성과 닿아 평등의 감수성을 낳았다는 점도 살핀다. 이는 이인상의 예술론과 작업으로 확장된다. 능호관의 문학적·예술적·이념적 자아를 형성하는데 주요 역할을 한 이윤영 등 단호그릅과의 교유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했다. 중국과 일본의 사정도 함께 기술, 동아시아적 맥락 속에서 조명한 점도 남다르다. 책은 엄밀함을 요구하는 연보의 전형을 넘어 완결된 독자적 저술로서의 새로움을 보여준다.

▶룰북(요스트 판 드뢰넌 지음, 김석현 옮김, 북스톤)=게임 산업은 이제 게임팩을 팔던 아이들의 장난감 산업이 아니다. IP, 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혁신 기술의 중심에 서 있다. 서브 컬쳐에서 엔터테인먼트의 주류 장르가 된 것이다. 20여 년간 게임 업계에서 활동하면서 게임 산업 및 비즈니스 전문가로 명성이 높은 드뢰넌은 오프라인 소매점 중심으로 영위돼온 게임산업이 어떻게 미래 산업의 중추로 부상했는지 게임산업의 변화와 기업들의 혁신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방대한 데이터 분석과 사례 연구를 통해 작품성과 상업성에서 성공을 거둔 게임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한다. 이들은 대부분 개발팀의 창의력 뿐 아니라 혁신적인 비즈니스 전략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게임 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디지털 유통과 프리미엄 전략, IP 전략, 라이브 스트리밍 등 혁신적 전략을 통해 도전을 기회로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모바일, 콘솔, PC게임사들이 어떻게 서비스 게임 모델로 전환했는지, 나아가 마이크로소프트, 닌텐도, 소니와 같은 콘솔 게임 기업들이 다운로드 콘텐츠와 스트리밍 콘텐츠 시스템을 적극 차용,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간 과정들을 들려준다. 또한 블리자드가 어떻게 온라인 롤플레잉 장르의 강자가 됐는지, 넥슨이 미국 시장에 어떤 전략으로 진출했는지도 살핀다. 저자는 서비스로서의 게임에서 미디어로 진화하고 있는 게임의 최신 트렌드도 소개한다. 게임사들이 기술과 고객의 요구 변화를 어떻게 성장의 기회로 활용해왔는지는 모든 산업에 시사점을 던진다.

▶잠자는 추억들(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문학동네)=201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트릭 모디아노의 수상 이후 첫 작품. 한없이 불안하고 유약한 젊은 시절 만났던 사람들과 우연히 연루된 사망 사건을 되짚어가며 과거를 재구성한 자전적 소설이다. 모디아노는 노벨상 수상 이후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작품 발표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의 침묵 이후 이 소설로 돌아왔다. 21개의 짦은 장으로 이뤄진 소설은 화자인 장 D.가 센 강변 헌책 노점상에서 우연히 ‘만남의 시간’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1960년대 파리의 거리들에서 먼난 이들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늘 뭔가 불안했던 그 시절, 수많은 기억의 편린 속에서 그는 마르틴 헤이워드라는 여성의 아파트에 일요일 저녁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했던 모임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그는 기억의 문 앞에서 주저한다. 대신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기숙학교에 다니던 자신의 유년기에 닿는다. 열네 살 무렵, 모두가 집에 돌아가는 휴일이면 그는 혼자 길거리를 배회한다. 가짜 러시아인 신분증을 가지고 알 수 없는 사업을 벌이던 아버지와 연극배우인 어머니는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그는 아버지의 친구, 러시아인 스티오파 씨의 딸을 늘 맞은 편 길거리에서 기다리지만 그녀를 만나지는 못한다. 기억은 계속 이어져 어머니의 빈 아파트에서 만난 스페인 여자, 오컬트 서점에서 먼난 준비에르 달람, 난생 처음 보호받는 느낌을 준 마들렌 페로, 그녀의 손에 이끌려간 위베르센 부인의 집과 어느 발레 애호가의 집, 그리고 무용수들….그런 만남의 기억은 헤이워드의 집에서 맞닥뜨린 죽음과 도주로 이어진다. 소설은 불안과 만남의 퍼즐을 이어가며 스스로 실체가 드러나도록 나아간다. 거장의 담백한 터치가 묵직한 양감을 만들어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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