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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크라戰 한 달] 동맹 복원·블록화 가속…脫냉전 시대의 종언
공산권 붕괴 후 30년간 지속된 다극화·세계화 약화…“새 시대 빠르게 도래”
푸틴 군사적 모험, ‘허언’ 비판 받던 바이든 “동맹 재건” 구상 단숨에 현실화
“존재 이유 의심받던 나토, 유럽 평화 지킬 유일 수단임 재확인” 평가도
권위주의 원재료·민주주의 완제품 국제 분업 체계 해체…탈동조화 확산
러 스위프트 퇴출로 달러貨 지위 재확인…中 위안화 도전 불러올 가능성도
2021년 6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스위스 제네바의 빌라 라 그렁주에서 만나 회담하고 있다. [TASS]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냉전 종식 후 30년간 이어진 한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면 침공 명령을 내린 이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의 데이비드 이냐시오 편집인이 기고문을 통해 한 말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촘촘하게 연결된 국제 사회가 외교와 협상을 통해 이해 관계를 조정할 수 있다고 믿어온 시대가 끝나고, 전쟁을 통해 국가의 이익을 관철하겠다는 ‘망령’이 되살아났다는 이유에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오는 24일로 정확히 개전 한 달을 맞이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세계는 불과 한 달 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던 먼 곳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끝났다 여겼던 미국 중심의 서방 군사 동맹이 부활했고, 대(對)러시아 제재 국면 속에 그동안 이념·정치적 색채를 최대한 배제한 채 ‘효율성’에만 집중했던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 현상엔 속도가 붙었다. 탈(脫)냉전 시대를 상징했던 ‘다극화·세계화’란 단어가 빠른 속도로 그 힘을 잃고 있는 것이다.

이냐시오 편집인은 “이미 흔들렸고 결국 교체될 운명이었던 기존 규범이 무너지고, 결과를 알 수 없는 ‘새 시대(the new era)’가 더 빠른 속도로 도래 중”이라고 했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귀환

불과 1년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내놓은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말이 현실이 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전면에 내세웠던 도널드 트럼프 호(號) 미국은 동맹 가치를 훼손하며 글로벌 리더로서 미국의 지위를 기반부터 흔들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쇠퇴기’에 접어든 미국이 패권 경쟁자 중국의 급부상을 막는 데 역부족일 것이라 내다봤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인 군사적 모험은 ‘허언’에 불과하다 비판받던 바이든 대통령의 구상을 단숨에 현실화 시켜버렸다.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은 물론, 한 달 뒤인 지난해 9월 미국이 영국 호주와 대중 안보 협의체인 오커스(AUKUS)를 출범시킬 때 흠집이 난 서방 동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과거의 분열상이 무색할 정도로 말 그대로 똘똘 뭉쳤다.

러시아를 향한 각종 제재 폭탄, 우크라이나 지원 등에 대해 전에 없이 단결된 모습 속에 러시아를 궁지로 몰아넣으며 세계적 ‘왕따’로 만들어버렸다.

미국 중심의 군사 동맹 강화도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미 존스홉킨스대의 국제정치학자인 할 브랜즈 석좌교수와 마이클 베클리 미 터프츠대 정치학 교수는 최근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낸 기고문을 통해 “역사적 소명을 다한 채 존재의 이유에 대해 의심받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유럽 평화를 지켜줄 유일한 다자간 안보체임을 재확인했다”고도 평가했다.

[외신 종합]

미 보수성향 매체 ‘내셔널 리뷰’의 전 편집장인 리치 로리 조차도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 기고문을 통해 “고립주의자(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는 틀렸다.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의 가치가 재발견 됐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동맹 재활성화 전략의 성과에 대해 인정했다.

‘세계화’ 시대의 종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가 러시아를 국제 사회에서 퇴출하는 과정에서 기존 글로벌 경제 구조 역시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모양새다.

가장 큰 폭으로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분야는 바로 글로벌 공급망 체계다. 러시아의 풍부하고 값싼 원자재와 에너지를 공급 받아 부가가치가 높은 완제품을 생산해 전세계에 공급하던 시스템이 서방의 대러 제재로 완전히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니켈, 코발트, 알루미늄, 목재 등 산업에 필요한 주요 원재료를 러시아의 공급망에 의존해왔던 전 세계 제조업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를 대비하며 생존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전체 수요의 40% 이상을 러시아산(産) 가스에 의존하는 유럽연합(EU)조차도 대체 공급원과 대체 에너지 발굴에 뛰어든 것이 현실이다.

일각에선 국제 분업 체계에서 노동력이 싼 권위주의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일지라도 싼 값이 풍족한 삶을 누리면 된다던 ‘효율’의 시대가 끝나고, 제 값을 치르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올바른’ 과정을 거쳐 생산된 제품을 구매하는 ‘이념’의 시대가 올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중간 패권 경쟁 과정에서 ‘인권’ 문제를 두고 벌어졌던 ‘탈동조화’가 확산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22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의 한 외화거래소 벽면을 장식한 미 달러화(貨)의 모습. [로이터]

러시아 외화보유고를 동결하고,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퇴출한 서방의 제재가 기축통화로서 미 달러화(貨)의 지위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된 동시에, 중국 위안화의 도전을 불러올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글로벌 투자자문사 유리존 캐피탈을 운영하는 스티븐 젠은 “대러 제재를 목격한 중국이 경각심을 갖게 됐다고 생각한다”며 “달러에 의존해온 자국의 취약성을 깨닿고 위안화를 기축통화 대열에 올려 놓으려는 시도를 하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정책연구소(PIIE)의 애덤 포즌 소장은 “전 세계 국가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라도 미국이나 영국 등에 몰려있는 자국의 외환이나 실물 금 등을 자국으로 이송, 경제적 자율권을 획득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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