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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레이크 없이 ‘전면전’ 향해 가속페달 밟는 ‘현대판 차르’ 푸틴
“푸틴, 시리아 내전 개입 성공 경험 우크라 침공에 적용”
美·나토 파병 완전 배제, 푸틴 ‘모험주의’ 부추겨
서방 제재 실효성 의구심도 푸틴 우크라 침공 막는 데 한계
“푸틴 우크라戰 승리, 美 패권·나토 신뢰에 치명타”
24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점령 중인 크림반도 페레코프 국경 검문소 부근에서 우크라이나 국경을 건너기 위해 이동 중인 러시아군 장갑차와 군용 차량들의 모습. 크림반도에 주둔 중이던 러시아군 탱크와 각종 군사 장비는 이날 새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군사작전 승인과 함께 우크라이나로 전격적으로 진격했다. [TASS]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결국 우크라이나와의 전면전 카드를 꺼내들었다.

외교적 협상은 물론, ‘사상 전례가 없는 수준의 제재’가 가해질 것이란 경제적 압박도 푸틴 대통령의 앞길을 막아설 수 없었다. 심지어 유혈이 낭자하는 살육전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도의적 외침조차도 푸틴의 전쟁 의지 앞에선 부질없는 노력이었다.

유럽연합(EU)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지금 현시점을 독일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서유럽 대부분을 점령했던 상황을 지칭하는 “다키스트 아워(the darkest hours, 최악의 시기)”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겐 서방과 달리 이번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이 외려 실추됐던 러시아의 유럽 내 존재감을 과시하고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분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다.

▶“시리아 내전 개입 성공 경험, 우크라 전면전에도 적용”=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날의 ‘경험’을 통해 우크라이나와의 전면전을 외교·안보적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기회’로 확신하고 있다고 봤다.

앞서 지난 11일(현지시간) 제임스 클레버리 영국 유럽 담당 부장관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은 러시아에 ‘수렁(quagmire)’이 될 것”이라 언급한 바 있다. 전면전 발발 시 민간인·군인 사상자가 8만5000명에 이를 것이란 추산이 있을 정도로 끔찍한 수준의 유혈 사태가 자명한데다, 서방 제재로 고통을 받게 될 러시아 엘리트들과 서민들의 민심 이반을 생각한다면 푸틴 대통령에겐 전면전이 비합리적이란 계산에서였다.

여기에 서방의 군사적 지원으로 잘 무장한 우크라이나가 결사 항전에 나설 경우 러시아에겐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것이란 분석도 서방 전문가들 사이에선 팽배했다는 것이 포린어페어스의 지적이다. 10년간(1979~1989년)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발목이 잡혀 국력을 소진했던 소비에트연방(소련)처럼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포린어페어스는 푸틴 대통령에겐 ‘시리아 내전’이란 성공적 경험이 있다는 점을 서방이 간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지난 2015년 시리아 내전에 개입, ‘독재’로 악명이 높았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구하는데 성공했다.

독일 마샬재단의 리아나 픽스·마이클 키머지 연구원은 “시리아 내 영향력 극대화는 물론 중동 지역에 대한 교두보 마련에 성공했던 경험을 푸틴 대통령은 갖고 있다”며 “이를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에도 그대로 적용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美·나토 軍 동원 조기 배제, 푸틴 부추겨”=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군사력 동원 등으로 강경책을 내지 못한 것이란 확신도 푸틴 대통령의 ‘모험주의’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바이든 대통령이 미 지상군 파병은 “테이블에 없다”고 말한 뒤 미 행정부 전체가 이를 되풀이한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정부군 교육을 위해 파견한 병력 수십명을 철수하고 대사관도 폴란드로 옮긴 것도 ‘인계철선’을 스스로 제거해버린 셈이 됐다.

이번 위기 국면에서 회원국 가운데 하나가 공격받으면 집단 방어에 나선다는 ‘나토 헌장 5조’를 거듭 강조한 것도 문제란 지적도 있다. 나토 회원국이 아닌 우크라이나가 공격을 받더라도 나토군이 자동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속내를 은연중에 들켜버렸다는 점이다.

세르지 코르순스키 주(駐)일본 우크라이나 대사가 25일 도쿄(東京)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코르순스키 대사 옆 화면에 ‘전범(war criminal)’이란 문구와 함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진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로이터]

서방이 강조하는 초고강도 제재 카드가 장기적으론 ‘자해 행위’가 될 것이라 보는 점도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막지 못한 요인으로 평가된다.

미 CNN 방송은 ”러시아가 정말로 아픈 지점을 때리려면 모두를 다치게 해야만 한다”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서방에 대한 러시아산(産) 석유·천연가스 공급을 중단시키는 것이지만, 고유가와 고물가가 이미 정치적 피해를 주고 있는 만큼 서방 지도자들이 러시아에 대해 내밀 제재 수단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자산 관리업체 AGF 인베스트먼트의 수석 미국 정책 전략가 그레그 밸리어는 “러시아가 서방의 상당 지역을 고(高) 인플레이션 경제 위기로 밀어넣고, 미국의 고립주의자와 국제주의자 간 분열을 촉발하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 親서방 정권 붕괴·동부 분할, 美·나토 신뢰까지 깰 것”=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국면에서 러시아의 승리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서방보다 많다는 점도 푸틴에겐 유리한 국면이다. 24일 우크라이나 내 특별 군사작전 수행을 선언하면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점령 계획이 없다”고 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포린어페어스는 “친(親)서방 정권 붕괴, 우크라이나 동부 분할로도 유럽 내 미국의 패권을 약화시키고, 나토가 유럽 안보를 책임진다는 믿음을 깰 것”이라며 “이 경우 나토는 확장 정책에 대한 재고가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고, 러시아는 ‘동진(東進)’ 방지 이상의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분석했다.

19세기 영국과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으로 불리는 세계 패권 경쟁을 하던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푸틴 대통령 개인의 역사 인식도 이번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도 있다.

마이클 맥폴 전 주(駐)러시아 미국 대사는 “푸틴은 내주 러시아 주식시장이 어찌 될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상관하는 건 30∼40년 뒤 역사책에 그가 어떻게 기술될 것인지다”고 설명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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