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러시아 ‘학생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러시아 대학생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오는 26일 이탈리아 재계 인사와 화상 회의를 가져 양국의 경제 협력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EPA]

[헤럴드경제=유햬정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이 커지면서 미국을 포함한 서방의 제재 경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탈리아 재계 거물과 협력 회의를 진행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사이에서도 러시아 제재를 놓고 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은 이탈리아 대기업을 이용해 틈을 파고든 거라는 분석이 나와 주목된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탈리아와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26일 내로라하는 이탈리아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화상회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탈리아-러시아 상공회의소와 이탈리아-러시아 비즈니스 위원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외무부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

타이어 제조업체 피렐리(Pirelli)의 마르코 트로체티 최고경영자(CEO)와 프란체스코 스타라체 이탈리아 국영 전기회사 에넬(Enel) CEO, 안드레아 오르셀 유니크레딧 CEO를 포함한 25개 주요 이탈리아 기업 CEO가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정부 관계자는 “회의는 공공 기관과 관련된 어떤 인물이 참여하지 않는 사적 계획”이라며 지정학적 긴장과 무관하게 행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드레아 오르셀 유니크레딧(UniCredit) 최고경영자(CEO). [게티이미지뱅크]

이탈리아 정부로선 이 행사가 러시아와 손을 잡는 듯한 모습으로 해석되는 걸 경계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거나 침공 이후 보복 성격으로 러시아를 제재하면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EU 안에서도 국가마다 경제적 타격을 받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제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어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탈리아는 러시아와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 2000년대 푸틴 대통령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때부터 무역관계가 확대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할 때엔 이탈리아는 EU의 대러 제재를 막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했다.

푸틴 대통령으로선 서방과 일촉즉발의 군사적 대치를 벌이고 있는 국면에서 이탈리아와 협력 공간을 넓히는 게 판세를 유리하게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고 봤을 거라는 분석이다.

이탈리아의 피렐리는 러시아에 공장 2개를 세웠다. 이탈리아 최대 석유회사 ENI도 러시아에 투자,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 회사 가스프롬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 두 나라는 고도의 협력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알렉산더 가부에프 카네기 모스크바 센터 선임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은 대기업이 서방국의 대러 제재나 규제를 약화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회담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은 이탈리아를 EU의 ‘약한 고리’로 보고 우크라이나 침공 시 유럽 제재의 파급력을 약화하기 위해 이러한 행보를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프란체스코 스타레이스 에넬(Enel) 최고경영자(CEO). [게티이미지뱅크]

크렘린궁 측은 푸틴 대통령과 이탈리아 기업 경영진이 “러시아와 이탈리아의 무역, 경제, 그리고 투자 관계와 협력 확대 가능성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며 “에너지, 산업, 금융 기술에 대한 협력 모색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탈리아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러시아와 이탈리아 간 무역량은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54% 증가한 275억달러(약 32조8870억5000만원)를 기록했다.

이는 유가 상승으로 인한 러시아 에너지 수출 증가에서 비롯됐지만, 이탈리아의 러시아 수출도 덩달아 20% 늘어나 110억달러(약 13조1500억원)를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