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남아공 인종차별 투쟁 지도자 투투 대주교 선종
향년 90세…1984년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으로 노벨평화상 수상
남아공에 ‘무지개 국가’ 별칭 지은 주역·세계 각국 지도자 추모 물결

데스몬드 투투 명예 대주교가 2012년 9월 21일 네덜란드 동부 드벤터 한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EPA]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차별정책)에 맞선 투쟁의 상징 인물인 데스몬드 투투 명예 대주교가 26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그는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과 함께 남아공 민주화와 흑인 자유 투쟁을 이끈 양대 지도자다. 특히 그는 백인 정권이 종식됐을 때 복수보다는 진실 규명을 전제로 한 용서와 화합을 주창했고, 이후에도 평생을 부정부패, 소수자 혐오 등 차별 철폐에 투신했다.

남아공 대통령실은 이날 성명을 내고 투투 대주교의 선종 소식을 알렸다.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남아공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투투 대주교는 교계는 물론, 비종교적 분야까지 포괄하는 보편적인 인권 옹호자였다"고 애도했다.

또 "투투 대주교는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투철한 애국자였으며,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성경적 통찰을 바탕으로 한 실용주의적 지도자"라고 기억했다.

대통령실은 투투 대주교의 사인을 밝히지 않았다.

투투 대주교는 반(反)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으로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지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자 조국에 '무지개 국가'라는 별칭을 붙인 주인공이다.

AP 통신은 만델라 전 대통령이 투옥돼 있던 시기에 투투 대주교가 국제 사회에서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의 얼굴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용서 없이 미래 없다'는 구호를 앞세워 진실과화해위원회를 구성하고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인종 간 화해를 일궜다고 평가받는다.

교계의 동성애 혐오에 맞섰고, 부패가 심했던 흑인 대통령 제이콥 주마 정부(2009∼2018)와 대립했다.

그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한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정실 인사와 순혈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인권 유린에 대한 보편적인 분노를 표현했으며, 공동체 정신, 화해, 용서의 깊은 의미를 감동적으로 보여준 삶을 살았다"고 설명했다.

넬슨 만델라 재단은 이날 성명을 내고 "투투 대주교는 특별한 사람이고, 사상가이자 목자이자 지도자"라며 추모했다. 이어 "남아공과 전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그의 삶은 축복이었다"고 했다.

투투 대주교는 1931년 10월 7일 요하네스버그 서쪽 작은 마을 클레르크스도르프에서 태어났다.

교사의 길을 걷던 그는 흑인 아이들에게 열악했던 당시 교육 환경에 분노해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30세에 성공회 성직자가 됐으며 55세에 대주교에 임명됐다.

1997년 전립선암을 진단받은 뒤 투병해 왔다. 2010년 은퇴 이후 공개 발언을 꺼린채 조용히 가족과 여생을 보냈다. 2015년부터 그의 입원 소식이 알려졌다.

지난 5월 투투 대주교는 부인 레아 여사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할 때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시민들이 26일(현지시간) 성 조지 성당 밖 데스몬트 투투 명예 대주교의 사진 앞에 꽃을 놓고 추모하고 있다. [AFP]

jshan@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