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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금은 죽지 않는다] 안전본능에 사망부고 사라진 현금…韓 현금통화 6년래 최대증가
[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19로 전세계 현금 유통량이 이전 증가율 대비 2~3배 가량 더 늘어난 가운데 우리나라 역시 20%에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 6년래 가장 큰 수준으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원화현금 22兆 늘어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우리나라의 현금통화(본원통화-중앙은행예치금) 잔액은 136조2000억원으로 한 해 사이 21조6000억원(18.9%) 늘었다. 현금통화는 한은이 실제로 발행한 화페발행액에서 은행들이 한은에 넣어 둔 지급준비금을 제한 것이다. 작년 현금통화 증가율은 지난 2014년(20.9%) 이후 가장 높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CEPR, 조나단 애쉬워스·찰스 굿하트)가 최근 발표한 논문 ‘거대한 코로나 현금 증가-디지털화는 현금의 안전 피난처 역할을 약화시키지 않았다(The Great Covid Cash Surge – Digitalisation Hasn't Dented Cash's Safe Haven Role)’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68개국(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34개국, 여타 신흥국 34개국)의 평균 현금유통규모는 전년대비 16.1% 증가했는데 이를 상회하는 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증가율(13.8%)도 큰 폭 웃돌고 있다.

교환매개수단 수요감소, 가지저장수단 인기

우리나라는 신용카드와 각종 전자결제 발달 등으로 결제 영역에서의 현금의 입지는 다른 나라보다 더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전체 가계 지출(2018년 기준) 중 상품·서비스 구매에 대한 현금결제 비중(금액기준)은 19.8%로 20% 아래로 떨어졌다. 동기간 비교시 미국과 일본이 각각 26.0%, 48.2%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소비에 있어서 현금 사용 빈도가 급격히 줄고 있으며, 작년 이후 이 수치는 더 감소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국내 현금 유통이 크게 늘어난 데에는 위기가 현금 보유 심리를 강화한 것에 영향을 받았단 분석이다. CEPR은 “팬데믹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화 급증을 촉발했는데, 이로써 현금은 조기사망에 대한 부고를 다시 한번 물리치게 된 것”이라며 “경제의 디지털화가 교환매개수단으로서의 현금의 역할을 축소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사설 디지털 통화 등에 따라 가치저장수단으로서의 역할은 약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대한 위기가 찾아오면 사람들은 지폐를 보유함으로써 안전·보호의 영역에 머물기 원하고, 어려움에 닥치면 종이돈을 다시 지갑에 넣음으로써 과거로 회귀하려는 성향을 나타낸다”고 덧붙였다.

작년 증가화폐 중 78%가 5만원권

CEPR은 “지난해 현금유통량 증가는 경제위기시 발생하는 현금비축 현상에 따른 것으로 보이며, 이는 고액권 유통량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것을 통해 입증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의 화폐발행잔액 증가액(21조8580억원) 중 5만원권(19조1157억원)이 87%를 차지했다. 반면 5만원권 환수율(기간중 환수액/발행액)은 발행이 시작된 2009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중앙은행 환수 이후 발생된 통화가치 하락도 유통량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CEPR에 따르면 지난해 미 연방준비은행으로 회수된 달러의 가치가 15% 하락했다. 이는 2000년 이후 가장 절하폭이 컸던 2009년(6.1%)보다 더 높은 수치다.

‘달러라이제이션’ 트라우마로 달러 절반 해외보유

일각에선 코로나19 이후의 초저금리 기조로 현금 보유에 대한 기회비용이 낮아진 것이 유통량을 증가시켰단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CEPR은 이에 대해 “금리 하락은 종종 유통 통화 증가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이미 그전에도 선진국은 제로(0)에 근접한 수준이었고 신흥국 역시 크게 낮은 상황이었다”며 “팬데믹 초기 패닉에 따라 ‘현금 돌진(dash for cash)’ 수준으로 현금을 비축하려는 것이 유통량 증가의 핵심 동인이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기축통화인 달러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현금 보유 수요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CEPR은 “미 통화의 절반 가량이 해외에서 보유되고 있으며, 과거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달러가 자국통화를 대체하는 현상)’을 경험했거나 자국 통화가 인플레이션에 따른 평가절하 우려가 있는 나라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며 “1980년대나 1990년대 신흥국에서 위기가 발생했던 시기에 달러의 해외 보유량이 급증했으며 2008년 금융위기나 유럽 재정 위기 당시에도 해외 달러 수요가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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