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공개된 문자 메시지 “선임과 분리해달라”…분리 미조치
센터 “군은 의미없는 사과 반복…지휘부 인권위에 진정할 것”
해군 “함장과 부장에 대해 징계위원회에 회부 예정…엄정 조치”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김지헌 기자 |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군인권센터(이하 센터)가 해군 강감찬함 소속 고(故) 정 일병이 극단적 선택을 한 데에는 함정 지휘부의 책임이 크다며, 이들이 생명권과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취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다고 9일 밝혔다.
센터는 이날 서울 마포구 센터 건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 일병이 사용했던 핸드폰의 포렌식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죽지 않아도 될 정 일병이 지휘관들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사망에 이르렀다는 점을 알았다”며 “강감찬함 함장 A 대령과 부장 B 중령(진)을 인권위에 진정한다”고 전했다.
이날 회견에선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정 일병의 문자 메시지가 공개됐다.
지난 3월 16일 오후에 정 일병은 A 대령에게 “(선임 수병이) 양모기작업을 서툴게나마 도우려던 저를 밀치며 ‘씨X, 니 뭐하는데? 그럴거면 꺼져라’ 등의 말을 했다. 제 얼굴을 때리고 팔을 손톱으로 긁으며 머리를 철판에 때렸다”며 “해당 수병의 전출 조치를 원한다. 자해 충동과 자살 생각이 이따금 든다”고 했다.
이에 A 대령은 “함장이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했지만,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조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3월 28일에 A 대령에게 “안타깝게도 강감찬함의 대원이 되지 못할 것 같다.오늘은 구토, 공황발작, 과호흡 증상이 오후 6시께 취사업무를 수행하던 중 이유없이 찾아왔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4월 1일에는 병영생활상담관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아무도 믿지 못하겠다. 제가 배에서 폭언을 당하기 전 정상이었다는 거 정도는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센터에 따르면 앞서 정 일병은 지난해 11월 어학병으로 해군에 입대, 지난 2월 1일에 강감찬함에 배속됐다. 그런데 전입으로부터 열흘이 지나 정 일병의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를 겪어, 정 일병은 간호를 위해 2월 25일까지 2주간 청원휴가를 내게 된다. 같은달 25일 부대로 복귀한 그는 코로나19 관련 지침에 따라 3월 9일까지 격리 조치됐다.
그런데 이후 선임병들의 정 일병에 대한 괴롭힘이 시작됐다. 아버지를 간호하고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의 자식이다”, “꿀을 빨고 있다”고 하며 그를 따돌렸다. 갑판병인 정 일병이 실수를 하자 3월 16일에 선임병 2명이 가슴을 밀쳐 갑판에 넘어뜨렸다. 그러면서 “뒤져버려라”라고 폭언했다고 한다.
지난 3월 23일에는 정 일병은 함내 부장과 주임원사에게 “과거 공황장애 약을 복용하다가 끊었으나 다시 약 처방이 필요하다”고 요청해 24일에 약을 처방받기도 했다.
3월 26일 정 일병은 가해자들과 한 배에서 지내다 자해시도를 했고, 이후 함장에게 연락해 구제 요청을 했다. 이때 함장은 가해자들을 불러 사과를 받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했다.
3월 28일 정 일병은 구토, 과호흡 등 공황장애 증상을 일으켰다. 그러나 함장은 정 일병을 하선 조치 하지 않고 같은달 29일 도움병사 C등급으로만 지정했다. 같은 달 30일 정 일병은 갑판에서 청소 중 기절한 채 발견됐다.
지난 6월 8일 퇴원한 정 일병은 같은달 18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센터는 “함장, 부장 등 강감찬함 지휘부는 정 일병의 폭언, 폭행 신고를 받고도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 공간에 방치하고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았으며 사건도 함 내에서 무마시켜버렸다”며 “피해자는 2차 피해와 극심한 스트레스에 놓였고 병가를 나간 이후에 폐쇄병동에 입원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이어 “군은 반성없는 사과가 얼마나 의미없는 일인지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며 “인권위가 바로 잡아나서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해군 관계자는 “해군은 해당 사건의 엄중함을 인식한 가운데 함정 병사 사망과 관련된 병영 악·폐습 전반에 대해 엄정하게 조사했다”며 “함장과 부장에 대해서는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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