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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까지 父 돌보려 노력했을 것”…90년대생 ‘영케어러’가 본 ‘청년 간병살인’
뇌출혈 아버지 굶겨 죽인 강도영, 2심 선고 앞둬
10년차 ‘영케어러’ 조기현 씨 “강도영의 노력 알아줘야…선처 바라”
영케어러들, 돌봄·생계·진로 설계의 부담 ‘3중고’
“돌봄이 불이익 아니도록 국가가 지원해야” 충고
10년간 아버지를 부양 중인 조기현 씨. [조기현 씨 본인 제공]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굶겨 죽인 혐의로 지난 8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22세 청년 강도영(가명) 씨의 사연이 주목받고 있다. 50대 아버지를 부양하며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삼촌 외에는 도움을 구할 곳이 없었던 강씨의 형편이 알려지며 수천명의 사람이 탄원에 동참하고 있다.

2심을 앞둔 강씨의 선처를 바라는 또 한 명의 청년을 만났다. 갑작스럽게 쓰러진 이후 치매까지 걸리게 된 아버지를 10년째 부양 중인 조기현(29) 씨다. 조씨는 돌봄의 기록을 다룬 ‘아빠의 아빠가 됐다’ 저자이기도 하다. 조씨는 9일 헤럴드경제와 전화인터뷰에서 가족에 대한 돌봄을 홀로 부담해야 하는 청년(영케어러)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털어놨다.

조씨는 “우리 공동체가 돌봄을 방치한 한 명의 사회적 약자를, 자녀가 아버지의 안전망이 돼 그 사람을 홀로 책임지려 최선을 다한 사람이 강씨”라며 “그가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끝까지 다했던 노력을 세상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조씨는 강씨와 닮았다.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단둘이 지냈고 ‘65세 미만’ 환자를 부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아버지가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당사자들이 입증해야 했다. 노인이 아니어서다.

조씨는 “장기요양보험제도 자체만 보면 65세 미만도 받을 수는 있다. 그런데 생계와 돌봄을 책임지면서 동시에 (돌봄을 받는) 이 사람이 근로 능력을 상실했는지 판단을 받고, 가난을 입증하고 신청하는 과정이 정말 너무나 지난하다”고 말했다. 강씨의 시간도 다르지 않았다. 강씨의 아버지는 지난해 9월 쓰러졌고 돌봄을 시작한 지 10개월도 되지 않은 사이, 강씨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돌봄을 멈추게 됐다.

조씨는 가족을 돌보는 ‘영케어러’다. 영케어러는 만성적 질병이나 장애, 정신적 문제 등을 가진 가족을 돌보는 18세 미만의 아동이나 청년을 일컫는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 당시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25세 미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지난해 기준 3만1921명이다. 영케어러에 대한 직접적인 통계가 없어 3만~4만명이 최소한의 잠정 수치일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김 의원은 영케어러들에 대한 실태조사와 국가의 체계적인 지원을 명문화하는 ‘청소년복지 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조씨는 영케어러가 ‘가족 돌봄·생계 부양·진로 준비’라는 삼중고에 직면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케어러들은 돌봄이란 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병원비를 마련하러 동분서주하게 되고 생계와 돌봄을 하는 시간이 하루를 채운다. 정작 미래를 설계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셈”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이런 영케어러들을 보며 ‘참 효자구나’라고 말할 게 아니라 ‘저 사람이 혼자 돌봄을 감당하는 게 적합한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근로능력이 없는 조씨의 아버지가 장기요양보험 적용 대상자가 아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인정받는 데도 7년이 걸렸다. 조씨는 “7년이나 걸려 몇백만원의 금액을 기약도 없는 순간순간마다 마련해야 하는 고통에서 벗어난 그날은 나에게 세상이 달라진 사건이었다. 보호자로 겪었던 어려움을 사회가 알아준다는 마음도 들었다”고 회상했다.

3년 전부터 조씨의 아버지는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서 의료급여와 생계급여 혜택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조씨는 그제야 매월 100만원이 넘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건설 일용직까지 뛰어야 했던 삶을 멈출 수 있었다.

조씨는 아버지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인정받은 뒤 돌봄의 기록을 출간해 비슷한 상황의 청년들과 연대하고 있다. 조씨를 포함해 6명의 영케어러가 들어가 있는 카톡방에서 이들은 ‘부양정보’, 영케어러 관련 법안의 뉴스를 보며 희망의 조각을 나누고 있다. 조씨는 “자조 모임을 통해 나만 겪는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고 내가 스스로 해나가고 있는 돌봄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나누며 버틸 힘을 얻는 게 영케어러들에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조씨에게 아버지를 돌보는 시간은 슬픔과 기쁨이 공존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는 “병원 밖에서는 너무 쓸쓸히 불행한 삶을 살았던 아버지가 지금은 마주할 사람들이 있는 요양병원에서 잘 지내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며 “지난 시간이 고통이었다는 건 틀림없지만 아버지가 한 명의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보람을 느끼고 어떻게 한 사람과 함께 살아나가야 하는지를 깊게 고민하게 된 경험이기도 하다”고 했다.

조씨는 돌봄과 개인의 삶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을 국가가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돌봄을 국가가 다 맡아 달란 게 아니다”며 “우리 모두는 사실 누군가를 충분히 잘 돌볼 수 있는 사람들인데 누군가 돌봄을 택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미래와 사회 참여에 치명적인 불이익을 입는 걸 막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씨와 닮은 또 다른 ‘영케어러’ 강씨는 존속살인이 아닌 유기치사를 주장하며 항소한 상황이다. 강씨에 대한 2심 선고공판은 10일 대구고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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