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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희의 현장에서] ‘비전’ 사라지고 ‘무협지’만 남은 대선판

지난주 다소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여의도 한복판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마감에 치였을 동료들에겐 미안하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보니 ‘일’이었던 정치 뉴스마저 흥미진진했다. 이 기간 언론을 뒤덮은 주요 이슈로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의원직 사퇴, 언론중재법 논란 등을 꼽을 수 있다. 대선판을 살펴보자면 더불어민주당은 본경선 TV토론을 진행했고, 국민의힘에서는 대선후보들의 비전발표회와 선거관리위원회 출범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정치는 무협지”라던 지난달 윤희숙 의원의 인터뷰 발언이 계속 생각났다. 매일 누가 누굴 공격했고, 상대는 그 공격에 어떻게 반격했는지 하는 것만 관심을 받는다는 얘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의 주인공이 무협지 속 주요 등장인물 중 하나가 돼버렸지만 말이다.

언제는 대선판에서 정책경쟁이 부각된 적 있었냐마는 “이번 대선은 정도가 심하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찍을 사람이 없다” “도대체 누굴 찍어야 하냐”는 지인들의 아우성도 심심찮게 날아든다. 제20대 대선이 200일도 채 안 남았건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여야를 가릴 것 없다. 미래 비전 경쟁은 실종된 지 오래다. ‘검증’을 앞세웠지만 실상은 저마다 집안싸움에 골몰하느라 소모적인 공방만 오간다. 심지어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사이에는 ‘명낙대전’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여배우 스캔들’에서부터 ‘형수 욕설’ ‘백제 발언’을 거쳐 ‘도지사 찬스’ ‘황교익 사태’에 이르기까지 막말을 넘나드는 설전이 오간다.

국민의힘도 뒤지지 않는다. 경선 룰을 둘러싸고 당 경선준비위원회와 대선주자 사이에 갈등이 폭발했다. 이 과정에서 당대표-대선주자 간 갈등이 전면으로 떠올랐다.

그 와중에 야심 차게 공약을 내놓는 대선주자도 있지만 내용이 공허하거나 선심성 포퓰리즘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거센 네거티브의 물살에 휘말려 떠내려가기 일쑤다. 당장 전 국민의 관심사인 부동산 문제조차 생산적인 정책토론이 이뤄지는 경우를 아직 본 적이 없다.

이번주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여전히 이재명 지사의 무료 변론 논란을 둘러싼 ‘명낙대전’이 불을 뿜고, 국민의힘은 선관위 출범 이후 역선택을 둘러싼 대선주자 사이의 대치가 한층 더 격렬해지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은 전날 충청 지역을 시작으로 지역 순회경선이, 국민의힘은 전날 후보등록을 마치며 경선버스가 출발하면서 신경전은 한층 더 격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선거판에서 당장 상대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네거티브가 주목받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선은 향후 5년간 우리나라를 이끌 새 리더를 선택하는 일이다. 단순 ‘대선 승리’를 넘어서 ‘대한민국의 미래’ ‘정권의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비전·정책경쟁이 여전히 중요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제 ‘무협지’는 그만 볼 때도 됐다.

yun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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