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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놀이하듯’...MZ세대의 아트 재테크 [문화 플러스-미술품 공동구매 바람]
주식·코인은 위험...새로운 투자법으로 각광
미술시장 온라인화...디지털세대 접근 수월
2040세대 60% 이상...소액투자로 만족감
재판매 등 위험 부담...옥석 가릴 줄 알아야
미술품 ‘공동 구매’가 신상 ‘문화 재태크’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서 아트테크가 인기를 끈 것은 이른바 ‘조각 투자’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다. 2018년 열매컴퍼니가 운영하는 아트앤가이드가 등장한 이후 지난해 서울옥션블루의 소투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아트테크 플랫폼이 MZ 세대의 놀이터가 됐다. [서울옥션 제공]

30대 초반 직장인 박수인 씨는 이달 초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앤가이드를 통해 일본 작가 야요이 쿠사마의 ‘호박’에 200만원을 투자했다. 5억 2000만원에 등장한 ‘호박’은 불과 1분 만에 공동구매가 마감됐다. 아트테크 플랫폼에서의 투자는 쉽고 간단하다. 플랫폼 업체가 작품 가격을 산정한 뒤 수백~수만 조각으로 나눠 펀딩을 진행한다. 투자자들은 원하는 금액만큼 투자하면 된다. 박 씨는 “오픈 시간인 오전 10시 전에 대기해 ‘광클’에 성공했다”며 “아트앤가이드는 수수료가 없는 데다, 다른 플랫폼보다 작품이 저렴하고, 회사에서 함께 투자해 수익과 리스크를 나눠가지니 안전한 투자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미술품 ‘공동 구매’가 신상 ‘문화 재태크’로 부상하고 있다. 이 시장의 ‘새로운 세력’은 MZ(밀레니얼과 Z세대를 합친 말) 세대. 미술시장에서 이들 세대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 주관사인 아트바젤과 글로벌 금융기업 UBS가 발간하는 아트마켓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중국, 멕시코 등 10개국 고액자산가 그룹 중 밀레니얼 세대는 지난해 예술작품 구입에 평균 22만8000달러(약 2억5900만원)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비부머 세대보다 2배나 많은 규모다.

문화 재테크가 ‘새로운 투자처’로 떠오른 데엔 이유가 있다. 전문가들은 “직장인의 봉급으로 부동산은 꿈도 못 꾸고, 코인이나 주식은 위험하고, 예적금은 이자율이 낮으니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문화 재테크에 이르게 됐다”고 본다.

아트테크 플랫폼, MZ세대 놀이터 되다

아트테크(Art+Tech)’는 이미 미술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정착했다. 국내에서 아트테크가 인기를 끈 것은 이른바 ‘조각 투자’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다. 2018년 열매컴퍼니가 운영하는 아트앤가이드가 등장한 이후 지난해 서울옥션블루의 소투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아트테크 플랫폼이 MZ 세대의 놀이터가 됐다.

열매컴퍼니와 서울옥션블루에 따르면 아트앤가이드와 소투의 주이용 고객은 2030 세대다. 김재욱 열매컴퍼니 대표는 “플랫폼엔 20~60대까지 다양하나, 2040 세대 비율이 60%를 차지하고 있고, 5060 세대는 굳건한 팬층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옥션블루 관계자는 “소투에서 2030 세대 비율은 60~70% 정도다. 30대가 가장 많고, 밀레니얼 세대에 걸쳐 있는 40대의 구매 비중이 가장 높다”며 “20대의 비중이 점차 높아져 20~3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아트테크 플랫폼에 따르면 2030 세대는 색감이 있고, 팬시한 작품을 좋아한다. 뱅크시나 데이비드 호크니 등 외국 작가 역시 젊은 세대의 취향이다. 사진은 13일 개막을 앞둔 이머시브 복합 전시 ‘아트 오브 뱅크시’ [엘엠피이컴퍼니 제공]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아트테크가 주목받은 것은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오프라인에만 존재했던 경매 시장이 온라인에서도 점차 커지며 MZ세대가 미술품 경매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많아졌다.

서울옥션블루 관계자는 “시장의 온라인화로 인해 디지털 세대의 접근이 쉬워졌다”며 “거기에 방탄소년단 RM처럼 미술에 조예가 싶은 K팝 스타가 등장하고, 인스타그램 등 SNS 채널을 통해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노출되자 자산가들의 투자라고 생각했던 미술을 젊은 세대가 좀 더 가까이 느끼게 됐다”고 봤다.

연령대마다 선호 작품엔 차이가 있다. 아트테크 플랫폼에 따르면 2030 세대는 색감이 있고, 팬시한 작품을 좋아한다. 뱅크시나 데이비드 호크니 등 외국 작가 역시 젊은 세대의 취향이다. 40대 이상은 박서보, 이우환 등의 거장 작가에게 관심이 높다. 아트앤가이드에 따르면 전연령대를 통들어 가장 선호도가 높은 작가는 김환기다. 아트앤가이드에서 14억원에 올라온 김환기 화백의 작품은 18분 만에 공동구매가 마감됐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야요이 쿠사마의 원화 ‘호박(Pumpkin)’이 아트테크 플랫폼 아트앤가이드에서 5억 2000만원에 공동구매로 등장, 1분 만에 마감됐다. [아트앤가이드 캡처]

소액 투자·높은 수익률 매력적...위험부담 커

아트테크 플랫폼의 ‘조각 거래’는 젊은 세대에겐 매력적인 투자 방식이다. 국내 주요 아트테크 플랫폼은 최소 1000원에서 최대 100만원까지 소액으로 작품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옥션블루 관계자는 “소액으로 부담없이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과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소유한다는 만족감이 젊은 세대에게 반응을 얻은 이유”라며 “한 조각, 한 부분을 소장한다는 자기 만족감이 공동구매의 이점으로 자리한다”고 말했다.

투자 대비 수익률도 좋은 편이다. 소투에 따르면 작품당 평균 수익률은 17.12%다. 김창열의 ‘회귀’는 20%, 천경자의 ‘무제’는 24.60%이 나았다. 최고 수익률은 무려 211.5%다. 아트앤가이드에 따르면 김환기의 ‘산월’은 22.2%, 이중섭의 작품(무제)은 15%의 수익률을 냈다. 게다가 작품의 가격이 6000만원 이하이거나, 작가가 생존해 있을 경우 소득세 비과세 대상이다. 세제 혜택이 크다는 것은 아트테크의 또 다른 장점이다.

다만 ‘공동구매’의 특성상 미술품 거래는 ‘큰 손’들이 이익을 보는 시장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공동구매는 투자 금액이 적으면 위험률이 낮은 대신 수익률도 떨어진다”며 “ 1만 조각을 공동구매 한다고 했을 때 N분의 1이 원칙인 만큼 많이 사들인 사람이 높은 수익을 가지는 ‘돈 넣고 돈 먹는 시장’인 셈이다”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거래가 투명하지 않아 소액 투자자는 들러리가 되는 사례도 있다.

2007년 11월 야요이 쿠사마 스튜디오에서 발급된 진품 인증서 [아트앤컴퍼니 캡처]

이러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아트앤가이드는 작품의 가격에 따라 최소 투자 금액과 구매 개수 등에 제한을 뒀다. 최근 공동구매로 선보인 ‘호박’의 최소 투자금액은 100만원, 최대 구매한도는 1000만원(10개 조각)으로 정했다. 김 대표는 “공동구매를 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공유해 수익과 리스크를 나눠갖자는 것이다. 구매 한도를 정해 특정 구매자로의 쏠림 현상을 방지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아트테크 시장은 트렌드로 떠오른 만큼 성장통을 함께 겪고 있다. 작품의 재판매 여부, 도난 가능성, 위작 논란, 개인간의 소유권 불법 거래 등 크고 작은 문제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심지어 MZ 세대의 경우 미술품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투자하는 경우는 드문 만큼 위험 부담도 적지 않다.

업계에선 ‘믿을 만한 플랫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플랫폼의 신뢰도는 ‘결과’가 말해준다. 관계자들은 “좋은 작품을 선별해 손해를 보지 않고 재판매를 하는 것이 플랫폼의 경쟁력이자 신뢰도”라고 강조한다. 작품의 재판매 여부와 판매 가격 등은 중요한 지표가 된다.

사실 재판매 기간 자체가 천차만별이다. 빠른 경우 평균 40~50일 만에 재판매가 이뤄지기도 하나, 최소 6개월~2년은 두고봐야 한다. 재판매가 이뤄지지 않아 악성 매물을 떠안게 되는 경우도 나온다. 아트앤가이드는 특정 작품의 경우 국내 갤러리와 재구매 약정을 체결, 2년 내에 작품의 재판매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해당 갤러리에서 작품을 재구매하는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아트테크에선 ‘묻지마 투자’는 금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거장이거나 검증받은 일부 작가가 아닌 이상 미술품 자체가 워낙에 환금성이 떨어진다. 미술품에 투자해 시세차익을 바란다면 오랜 기간 지켜봐야 한다”라며 “당장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시장은 아니기 때문에 사전 공부가 필요하다. 특히 취향이 아닌 투자 목적의 구매라면 옥석을 가릴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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