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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사색]이대남· 이대녀가 사는 법

“엄마, 내가 밥을 좀 해먹고 싶은데, 밥솥을 뭘 사야 해?”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독립한 지 7년차 아들이 얼마 전 돌연 ‘홈쿡’ 선언을 했다. 사먹는 밥에 질렸을 법도 하고,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안전한 집밥을 떠올렸을 듯하다. 그때부터 장장 5시간에 걸친 전방위 인터넷쇼핑이 시작됐다. 그야말로 숟가락, 젓가락부터 예의 전기밥솥, 냄비, 식기류, 도마, 칼, 식용유와 각종 장, 식재료까지 검색과 주문을 반복했다. 누가 보면 시집, 장가라도 보내는 줄 알았을 게다. 구매목록을 카톡으로 보낸 뒤에도 주문 목록은 늘어났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엄마, 밥을 했는데 이게 뭐라고 해야 하나, 약간 떡처럼 됐어. 왜 그런 거지?”

“질어서 그래. 물을 좀 덜 넣어봐. 계량컵으로 쌀 두 컵 넣으면 밥솥에 2까지 물을 넣어야 하는데, 그것보다 좀 적게 넣어봐.”

“알았어. 그리고, 보내준 재료로 된장찌개를 끓였는데 뭔가 깊은 맛이 안 나. 멸치 같은 걸 넣어야 하나?”

나는 아직도 된장찌개에 자신이 없다. 많은 사람에게 전해들은 나름의 요리법을 응용해보지만 만족스럽지 못하다. 아들은 그 어려운 걸 묻고 있는 거다.

사실 된장만 맛있으면 80%는 거저인데, 그런 집된장이 없다는 게 문제다.

아는 대로 알려줬다. “엄마 말대로 잘 연습해서 한 번 내가 밥 차려줄게.”

뭐지? 이 철 있음은!

저녁마다 아들의 전화는 이어졌다. 한 시간씩 통화하고 나면 좀 지쳤다.

“엄마, 오빠가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해.” 집순이 딸은 불만이다. 엄마와 수다 떨 귀한 저녁식사 시간이 날아가 버린 탓이다. 막 이십 대가 된 딸은 주로 주문으로 밥 혹은 주전부리를 해결한다. ‘오늘 뭘 주문할까?’가 그녀의 고민이자 즐거움이다. 그쪽으론 나와 딸은 죽이 잘 맞는다.

일주일이 지나자 아들의 전화가 그쳤다. 며칠 뒤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 “밥은 잘돼?”

“응. 괜찮게 해. 근데 김치찌개를 만들어봤는데, 김치를 볶다가 물을 넣고 스팸 넣어서 끓이는데 이게 밍밍하더라고, 그래서 된장을 조금 넣었는데, 와~ 맛이 진짜 훌륭해.”

이건 또 무슨 ‘창의 뿜뿜’한 요리인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김치찌개 레시피였다. 하긴 국민요리사 백종원이 액젓을 넣는다고 했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그래, 요리에 정답이 어딨어. 입맛만 맞으면 되지.

아들의 수다는 이어졌다. “엄마, 근데 아파트 값이 장난이 아니야. 내가 이사하려고 올 초에 서울을 다 돌아다녔잖아. 그때 노원구 쪽 작은 평수 아파트들이 4억원대였는데, 지금 얼만지 알아? 6억이 다 넘어. 와~ 불과 6개월 사이에.”

아들의 얘기는 ‘기승전 아파트’였다. “안 먹고 안 써도 못 사. 월급받아서 어떻게 사? 그래서 비트코인이나 도박에 20대들이 빠지는 거야. 한탕에 거는 거지. 열심히 일해서 뭐해? 집도 못 사는데, 20대는 다 그렇게 생각해. 희망이 없다는 거지. 엄마아빠 세대처럼 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겠다는 애들은 없어. 충성심도 없고. 좀 더 보수가 좋은 데로 움직이는 거지. 회사와 맞지 않으면 나오고. 청년임대아파트 누가 좋아해? 내 것도 아닌데.”

90년대생 아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보인다. 부모 세대와 가치관이 많이 다르지만 정책의 방향은 젊은 세대에 맞춰야 한다고 본다. 어제는 틀리고 지금이 맞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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