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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헌의 현장에서] 폭염 속 ‘에너지 빈곤층’ 어쩌나

“선배, 병원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26일 오전 수습기자 한 명이 난데없이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평소 에너지가 넘쳐 보이던 수습기자였는데, 뜬금없이 몸이 안 좋다고 하니 팀에서 그를 교육하던 사람들이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적잖이 당황했다. 병원에서는 해당 수습기자에게 폭염으로 인해 탈수 증세가 나타났다며 휴식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후 안정을 찾은 수습기자는 자신의 체력이 많이 부친 이유 중 하나로 ‘집 안 에어컨이 고장난 점’을 들었다. 폭염인데도 집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당 수습기자가 조만간 이사 갈 것이란 이유로 집주인이 20년 된 노후 에어컨을 교체해 주지 않는 데다 이 에어컨이 하도 고장이 잘 나 에어컨이 없는 것에 진배없다는 것이 수습기자의 설명이었다.

이 수습기자는 “에어컨 없이 선풍기 한 대로 근 한 달을 버텼다”며 “새벽 더위에 몇 번을 잠에서 깼는지 모른다”고 하소연했다.

비단 해당 수습기자만 폭염 속 고충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 출동하는 일선 경찰관들이나 공무원들도 어려움을 토로한다. 최근 기자와 만난 서울 마포구 한 파출소의 경찰관은 “차량 안에서 잠시라도 에어컨 바람을 쐬지 못하면 현장 근무를 버틸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무더위에 최근 경찰 내에서는 사고까지 났다. 25일 오후 충북 충주시 중앙경찰학교에서는 구보훈련을 받던 교육생 3명이 의식을 잃었다. 이 중 1명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나머지 2명은 입원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한다.

젊은 기자도, 건장한 경찰관도 버티기 힘는 ‘고난의 하루’가 실로 매일매일 지속되고 있다. ‘마스크를 쓰면 사우나를 온 듯 하다’고 내뱉는 시민들의 푸념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 더위다.

그런데 이 사우나 같이 푹푹 찌는 날씨에도 제대로 된 냉방기기 없이 매일매일을 보내야 하는 계층이 있다. 바로 ‘에너지 빈곤층’이다. 에너지 빈곤층이란 적정한 수준의 에너지 소비를 감당할 경제적 수준이 안 되는 가구를 의미한다. 쪽방촌 등에 사는 빈곤계층 노인은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와 같은 기본적인 냉방기구도 제대로 보급받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다.

젊은 기자든 경찰관이든 에어컨이 없으면 잠시라도 버티기 힘든 날씨에, 기력 없는 노인들이 환기도 잘 안돼 숨이 턱턱 막히는 공간에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기자와 쪽방촌에서 만난 70대 윤모 할아버지는 “20여 년 전에도 선풍기와 손부채를 통해 더위를 버텼는데 요즘도 이것들로 버티고 있다”며 “구호물품으로 이것저것 들어오긴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더위를 버티는 방법에는 큰 차이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쪽방촌에 거주하는 또 다른 할머니는 “1990년대 여름이나 지금이나 이곳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더위는 별반 차이가 없다”며 “오히려 몸이 늙어 한 해가 갈수록 버티기 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파는 에너지 빈곤층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이전에 그나마 노년층이 더위를 피할 수 있었던 경로당이나 쉼터 등이 코로나19 감염 차단 명목으로 문을 닫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서로 모일 수 없는 빈곤계층 노인들이 외로이 떨어진 각자의 방에서 찜통더위를 온몸으로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현실인 것이다.

폭염의 피해가 에너지 빈곤층에게, 외로운 빈곤계층 노인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게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각계 각층의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때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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