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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은 ‘고슴도치’ 영업...소비자는 ‘답답[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100일]’

“내일 다시 오셔야 할 것 같은데...혹시 다른 상품은 어떠세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100일을 이틀 앞둔 1일 서울 마포구 한 시중은행 창구. 직원은 “30분 안쪽으로 상품 가입을 끝낼 수 있다”고 이야기했으나 20분을 소요하고도, 상품 가입에는 실패했다.

문제는 투자성향분석이었다. 과거 기록에 남은 ‘공격투자형’ 성향을 반영해 직원은 주식형 펀드 위주로 설명서 등을 뽑았으나, 이번 방문에서는 ‘적극투자형’이 나왔다. 삼성전자, 네이버 등 소위 우량주로 구성된 상품이었지만 적극투자형이 나온 이상 가입이 불가능했다.

직원이 다시 권한 상품은 채권형이었다. 수익률이 낮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하자, 직원은 “그럼 내일 다시 오시라”고 했다. 예전에는 투자성향분석을 바로 다시 할 수 있었지만 금소법으로 금지됐다.

다른 시중은행 직원은 “설명을 다 해줘도 ‘못들었다, 모르겠다’는 분들이 있어, 젊은 고객에게는 차라리 모바일로 가입하라고 권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부천의 또 다른 시중은행 창구 직원은 “오히려 원하는 상품에 맞는 성향이 나오도록 의도하고 투자성향 테스트를 받는 경우도 있어 해당 절차가 의미가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3일이면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된 지 100일이다. 소비자 보호는 강화됐지만, 소비자 편익은 감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소법이 금융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데다, 시행령 조차 애매해 금융사들이 위법 회피에만 급급하면서 소비자 편익은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객들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설명 받지 못했다고 항의하거나 민원을 넣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지난 3월 25일 법은 시행됐지만, 은행들은 아직 법무법인 등으로부터 외부 컨설팅을 받아 내부업무 프로세스 등을 개선 중이다.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TF에서 마련 중인 은행권 공통 업무 매뉴얼도 아직이다. 금융위가 금소법 위반 비조치를 약속한 9월25일까지 남은 시간이 빠듯하다.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 외부 컨설팅이 끝났고 겨우 초안을 마무리한 단계”라고 말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자체 업무 매뉴얼에 대한 불안도 크다. 은행권은 영업현장의 혼선과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당국에 세부지침을 담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계속 높이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설명의무 이행’과 관련해 상품별 설명의무 사항의 구체적인 분류와 면책기준 등이 포함된 가이드라인이 신속히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법 준수 범위 내에서 창구업무 시간을 줄이기 위한 면책기준이 신속히 마련돼야 한다”며 “설명의무 대상이 되는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구분해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상품설명이 길어고 고객들의 직접 확인해야 할 문서의 양도 많아지니 상품가입을 하지 않고 발길을 돌리는 고객들이 많다”며 “한 고객을 응대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다양한 상품을 소개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구속성 관련 규정은 일방적인 규제 강화로 소비자의 불만을 키운 대표적인 사례다. 이른바 ‘꺾기’ 방지를 위해 고객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전후로 한 달간 다른 금융 상품 가입을 일괄 제한한 규정이다. 은행권에서는 해당 규정으로 인해 자발적인 의사로 필요에 의해 금융상품을 가입하려는 고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대출을 받고 향후 대출상환 자금을 조금씩 모으기 위해서 적금을 가입하려는 고객들도 있다”며 “고객들의 다양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구속성 판매라는 틀에 묶어 규제하면서 고객들의 권익이 훼손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환 기자

nic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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