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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아프간 전쟁의 기억과 호국보훈의 교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참배인원이 줄어들어 조용한 ‘호국보훈의 달’ 현충원을 빠져나오면서 선배 전우들의 살신성인에 대해 생각해보는 다소 교만한 상념에 빠졌다.

2002년 가을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군사령부에 파병됐을 때 일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제안보지원군과의 작전회의 참석차 수도 카불로 이동하던 중 잠시 차를 세워야 했는데 차를 세우자마자 아프간 아이들이 몰려들면서 외쳤다. “기브 미 워터, 기브 미 원 달러.”

우리 아버지세대가 6·25전쟁 때 미군에게 “기브 미 초콜릿, 기브 미 껌”을 외친 모습이 이러했을까. 당시 아프간에서 차 밖으로 생수병을 던져주는 행동은 금지돼 있었다. 아이들이 생수를 줍다 지뢰를 밟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카불 시장에 들렀을 때도 아이들은 “기브 미 워터, 기브 미 원 달러”를 소리쳤다. 아이러니하게도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따라야 하는 아프간 여성들도 전통의상 부르카를 쓴 채 까무잡잡한 손만 내밀어 파슈툰어로 구걸을 하곤 했다. 전쟁으로 가장을 잃은 전쟁미망인들로 보였다. 이런 사정에 익숙했던 미군의 조언으로 미리 준비한 칫솔, 치약, 휴지 등을 나눠주니 아이들과 여성들은 하나씩 받아들고 고개를 숙인 뒤 사라졌다.

돌아오는 길에 유엔 마크가 선명한 현지인들이 생활하는 텐트가 눈에 들어왔다. 사막 한가운데 설치된 텐트를 보면서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이 떠올랐다. 소련과의 전쟁과 탈레반의 지배 등으로 고달픈 아프간과 평화로운 일상이 보장된 대한민국, 그리고 지뢰밭을 놀이터 삼아 뛰어노는 아프간 아이들과 월드컵 축구경기를 함께 응원했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교차됐다.

아프간의 비참한 현실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동행한 미군이 한국도 얼마 전까지 아프간처럼 전쟁을 치렀고 굉장히 힘겨운 시절을 겪지 않았느냐는 말을 꺼냈다. 갑자기 자존심이 확 상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미군은 한 술 더 떠 내 자존심에 대못을 박는 한 마디를 더했다. 어려웠던 한국이 발전해 이제는 아프간을 돕기 위해 당신처럼 군인을 파병하니 미군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자랑스럽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올해는 유난히 국방·안보 분야에 희소식이 많다. KF-21 보라매 시제기 출고,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 경항공모함 도입 추진 등 놀랍게 발전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면서 현충원에 안장된 선배 전우들께 진정으로 감사드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자부심이 든다.

또 미국과 미군이 한국과 한국군을 대등한 파트너로 생각해야 할 때가 됐고, 한국도 아프간에서의 미국처럼 국익을 위해 국제무대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나는 2002년 아프간에서 그 미군에게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사명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현충원의 수없이 많은 선배 전우의 묘비를 아느냐, 미군들이 우리 선배 전우와 같이 목숨 걸고 싸워줘 고맙게 생각한다, 한국군은 지금도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나 또한 전역한 선배 전우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후배 장병들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이다.

임석훈 대한민국비상계획관협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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