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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또 뒤집힌 과거사 판결, 외교적 노력으로 해법 찾아야

일본 전범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법원에 의해 각하됐다. 앞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2년8개월 만에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판결을 1심 법원이 정면으로 부정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로, 한·일 과거사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서울중앙지법의 판결 이유는 명료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국제법적으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구속된다”며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는 없으나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한발 더 나아가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기까지 했다. “식민지배와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법적인 법 해석이다. 일본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국제법적으로도 인정됐다는 자료가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만약 청구를 인용하는 본안판결이 확정돼 강제집행이 이뤄지면 국제법정에서 한국이 패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서울중앙지법아 지난 4월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를 각하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모진 세월을 견디며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을 기다려왔던 피해자와 유족에겐 억장이 무너지는 판결이지만 국제법적 해석은 서울지법의 냉정함에 동조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차제에 일본에 배상을 추궁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징용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우선 정부와 청구권 자금의 수혜 기업이 중심이 돼 기금을 조성해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대위 변제하는 방식이다. 행정부만의 노력으로 어렵다면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제안했던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일본에는 사죄·반성을 촉구하되 물질적 차원의 대일 배상 요구 포기를 선언할 수 있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왔다. 그간 정부는 사법부 판단 존중과 일본과의 관계개선 노력이 상충하는 구조적 모순에 빠져 있었다. 결론적으로 일본의 입지를 살려주는 듯한 이번 판결은 과거사 문제에 발목 잡힌 한·일 관계를 개선할 여지를 주는 역설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일본과의 화해와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때마침 11일부터 런던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참석한다. 한국과 일본이 한발씩 양보하면서 합리적 해결방안을 도출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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