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진짜 같은 ‘가상 인간’ 왜 전부 여성인가?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LG전자 가상인간 김래아, 가상인간 루이 리, 미국 스타트업 ‘브러드’가 개발한 가상인간 ‘릴 미켈라(Lil Miquela)’.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유명한 가상인간은 왜 죄다 여성으로만 설정됐을까?”

샘(삼성전자), 김래아(LG전자), 테이(마이크로소프트), 알렉사(아마존), 이루다(스캐터랩) 등 국내외 기업들이 선보인 가상인간은 모두 ‘여성’이다. 그것도 ‘젊은 여성’이다. 업계에선 여성 가상인간이 기본형으로 굳어진 배경엔 ‘여성’이라는 성별이 주는 친밀감과 전달력 높은 목소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는 주장과 함께 성적 대상화를 심화시킨단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더 호감가고 전달력 있어서”…IT업계, 여성 가상인간에 주목

현재 기업들이 공개해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진 가상인간은 대부분 여성이다. LG전자가 선보인 ‘김래아’는 미래에서 온 아이(來兒)라는 뜻으로,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외형에 인공지능(AI)기술로 목소리를 입힌 캐릭터다. 래아는 올해 23세의 여성으로, SNS에서 일상사진을 올리고 작곡활동을 하는 인플루언서다. 래아는 본인을 ‘싱어송라이터 겸 DJ’라고 소개한다.

삼성전자가 가상비서 캐릭터로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진 ‘샘(Sam)’도 최근 화제의 중심에 섰다. 정식 공개 전부터 해외 네티즌들 사이에 인기가 뜨겁다. 검은색 상의에 청바지를 입은 여성 캐릭터로 샘은 이미 ‘삼성 걸(girl)’로 불린다.

가상인간 인플루언서 버뮤다 [버뮤다 인스타그램 캡처]

미국 스타트업 ‘브러드’가 개발한 가상인간 ‘릴 미켈라(Lil Miquela)’는 인스타그램과 틱톡, 유튜브 등을 합해 500만명에 가까운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미켈라는 캘빈클라인·샤넬 등 명품 브랜드 모델로도 활동했다. 2019년 130억원의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미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켈라의 인스타그램 포스팅 단가는 약 8500달러(939만원)에 달한다. 이밖에도 가상인간 ‘루이 리’로 유튜브 등에서 여성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음성만 가상으로 만든 경우 기업 뿐 아니라 공공기관도 대부분 여성 목소리로 설정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 공공기관 등 총 507곳의 기관을 전수 조사한 결과 ARS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의 91.3%가 여성의 목소리를 채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성 목소리는 0.8%에 불과했다. 해외 기관에선 60% 상당이 여성의 목소리, 40%가 남성의 목소리를 활용하는 것관 대조적이다.

LG전자의 가상 인간 김래아[인스타그램 캡처]

업계에선 유난히 여성 가상인간이 많은 이유가 사용자들의 선호도와 무관치 않다고 설명한다. 많은 사용자들이 남성의 목소리보다 여성의 목소리를, 남성의 외모보단 여성의 외모에 더 큰 친근감을 느낀단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미국 인디애나 대학 칼 맥도맨 교수의 2008년 연구 내용에서도 엿볼 수 있다. 맥도맨 교수는 동료 연구원들을 남성과 여성 그룹으로 나눈 뒤 컴퓨터가 합성한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그 결과 두 그룹 모두 여성의 목소리가 더 따뜻하고 안정감있게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여성 목소리의 주파수가 더 높아(하이톤) 더 멀리, 또렷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개발 단계에서 여성 가상인간이 채택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잊을만 하면 불거지는 성적 대상화 논란…성차별적 고정관념 심화도 문제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 [출처=이루다 페이스북 계정]

문제는 이같은 여성 가상인간들이 빈번하게 여성혐오, 모욕의 대상이 되고 있단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초 불거진 챗봇 이루다 사태다. 사용자가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가지 신상 정보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20대 여대생으로 설정됐다. 하지만 이후 서비스 과정에서 일부 이용자들이 이루다에게 성차별적 발언은 물론 성희롱까지 했단 사실이 알려지며 서비스가 종료됐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브라질 현지 직원들의 영업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샘’이 유사한 논란에 휩싸였다. 해외 네티즌들이 샘을 주인공으로 한 다양한 팬아트, 코스프레 등을 연출하는 과정에서 샘을 성적으로 소비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상인간 테이.

일각에선 이러한 사태가 예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이루다 사태 당시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 “챗봇이 20세 여성으로 설정되는 순간 우리 사회에서 성착취에 가장 취약한 20세 여성이 그대로 투영되지 않을 수 없다”며 “굳이 AI에 젠더나 나이를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여성 가상인간이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심화시킨단 우려도 나온다. 유네스코는 지난 2019년 ‘젊고 친절한 여성 AI 확산’에 대해 이같이 지적하며 “기존 AI 서비스가 재현하는 여성이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명령에 복종하는 역할’에 한정돼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의 보도에 따르면 전문적인 서비스에는 남성형 AI를 선호하는 반면, 사랑이나 관계에 관련된 분야에서는 여성형 AI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상인간에 성별이 왜 필요?…‘무성’ 가상인간도 등장

여성 가상인간을 둘러싼 논란이 잇따르며 성별을 짐작키 어려운 ‘무성’ 가상인간도 등장했다. 구글 챗봇 ‘메나’, 페이스북의 ‘블렌더’ 등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19년 미국 NGO 단체 ‘이퀄 AI(Equal AI)’는 업계 최초로 성 정체성이 없는 AI 목소리 ‘큐(Q)’를 공개했다. 이퀄 AI는 Q의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가 중성적이라고 주장하는 남녀 4600여명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Q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전문가들도 AI의 경우 프로그램 코드가 만들어낸 무성의 존재인만큼,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적 목소리가 더 적합하단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rim@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