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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습기살균제 위해성 제대로 평가 안해”…1심 결과 반박 논문 보니[촉!]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보건환경학과 교수 연구팀
환경보건학회지에 실린 논문 통해 1심 재판부 반박
“피해와 인과관계 엄밀하게 입증 안되면 형사처벌 받지 않는다는 의미”
“재판부, CMIT/MIT ‘누적 노출 용량’·천식 등 기존 임상 사례 고려안해”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를 받은 지난 1월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해당 선고 결과를 부정하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인체에 해로운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최근 살균제의 제품의 위해성이 낮지 않다며 재판 결과를 반박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해당 연구결과가 실린 논문은 “재판부가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3일 학계 등에 따르면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최근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보건환경학과 교수 연구팀의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함유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제조 및 판매기업 형사판결 1심 재판 판결문에 대한 과학적 고찰 (Ⅰ)-’이라는 논문이 게재됐다.

연구팀은 “재판부는 CMIT/MIT의 독성평가 호흡기를 통한 인체 내 흡수, 호흡기로 흡수된 이들 화학물질이 천식과 폐 손상을 일으키는 각각의 과정에서 형사판결의 엄격한 인과관계를 충족하는 데 부족하다고 판결했다”며 “저자들은 이 제품이 폐 손상 등 건강 피해를 일으킨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학적 사실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1심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CMIT/MIT의 노출과 폐질환 혹은 천식 등 건강 영향과 인과성을 ▷CMIT/MIT 함유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위험성 ▷공기 중 CMIT/MIT의 유의미한 발생과 호흡기 노출 정도 ▷CMIT/MIT의 호흡기질환 유발 가능성 등 세 가지 근거를 들어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1월 12일 무죄를 선고받은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가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

그러나 연구팀은 CMIT/MIT의 위험성이 분명하다고 봤다. 이들은 “제품 제조와 판매 기간(1994~2011년) 동안 CMIT/MIT의 호흡기와 피부 질환 사례는 단순 검색만으로도 찾을 수 있다”며 “가습기 물에 CMIT/MIT 등 화학물질을 넣어 사용한 사례는 없었다. 우리나라만 가습기살균제를 제품으로 제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심지어 이 제품은 ‘내 아기를 위하여’, ‘신선한 공기’ 등의 광고 문구를 사용해 안전하다고 홍보했다”며 “이번 판결은 제품 안전을 사전에 확인하지 않는 등 기업의 과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화학물질 제품을 제조하고 판매해 대중을 위험에 처하게 하더라도 피해와 인과관계가 엄밀하게 입증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고 비판했다.

“담배 1개비 유해물질의 공기 중 농도로 폐암 위험 판단하는 셈”

특히 연구팀은 재판부가 근거로 삼은 2019년 환경부의 공기 중 CMIT/MIT의 노출 재현 실험 연구를 문제삼았다. 이 연구에서는 가습기살균제 하루 권장 사용량(10㎖)의 1∼10배를 2ℓ 용량 가습기에 물로 희석해 넣은 뒤 공기 중에 있는 CMIT/MIT 농도를 측정했다.

연구팀은 “CMIT/MIT 노출 위험은 특정 시점의 공기 중 농도뿐 아니라 가습기에 넣은 총량과 사용 시간·기간 등을 고려한 ‘누적 노출 용량’을 고려해야 한다”며 “(환경부 연구는)담배 1개비에 든 유해물질의 공기 중 농도로 폐암의 위험을 판단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재판부는 권장량인 10㎖를 사용했을 경우 공기 중 CMIT/MIT 농도가 ㎥당 1.32㎍(마이크로그램)으로 극미량만 검출됐다며 위해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으나 연구팀은 자신들의 기존 연구 결과를 들어 반박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폐 손상자 9명(8명은 6세 이하)이 작은 방 2m 거리에서 2∼17개월간 매일 일정 시간 CMIT/MIT만 함유된 살균제를 사용했는데, 누적 노출 시간이 336∼4312시간에 달했다. 5세 이하 어린이가 하루 10시간 살균제를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CMIT/MIT 누적 흡입량은 1일 27㎍, 월 800㎍으로 법원이 제시한 수치보다 훨씬 높았다.

연구팀은 “실내 공기 중 농도가 낮다고 하더라도 환기가 부족한 공간에서 매일 수 개월 동안 반복해서 아이들이 화학물질에 노출되면 위험하다고 추론할 수 있다”며 “재판부에서 인용한 노출 재현 연구는 환기, 사용량, 방 크기 등 등 실험 조건을 고정했기 때문에 사용자의 다양한 환경조건과 노출수준을 예측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가습기살균제 함유 물질 관련 임상 사례 고려하지 않아”

아울러 연구팀은 수용성인 CMIT/MIT 성분이 하기도(호흡에 관여하는 기관지, 세기관지, 폐포 등)에 도달해 폐 손상이나 천식을 일으키기 어렵다고 본 재판부의 판단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제품에서 CMIT/MIT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안정제로 첨가된 훨씬 많은 양의 질산마그네슘과 혼합돼 있다”며 “개별 물질의 특성만으로 공기 중 발생과 호흡기 흡수를 결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용성과 반응성이 높은 물질도 하기도 질환을 초래하는 사례가 많았고 (재판부가)CMIT/MIT를 취급하는 노동자의 천식 사례, CMIT/MIT 단독 제품 사용자의 폐 손상 임상 사례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2일 서울중앙지법 제23형사부(부장 유영근)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애경산업·SK케미칼의 전 대표를 포함, 이마트·필러물산 관계자까지 총 12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항소하면서 지난 18일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 윤승은) 심리로 이들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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