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적 말소한 야속한 아빠…9살 소년은 부모만 기다려 [유령아이 리포트]
〈2부 : 사랑받지도, 기록되지 못하는 아이들〉 ② 부산 보육원에서 지내는 주원이 이야기
주원(9세·가명)이의 가족관계등록부(호적)는 2020년 7월 폐쇄됐다. 주원이의 아빠가 친자가 아님을 확인해 달라는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해 법원의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권해원 디자이너]

“이상해요. 분명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아이인데 폐쇄가 됐다고 나오네요.”

보육원 원장 임모 씨(61)가 주민센터 직원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건 작년 7월이다. 보육원에서 키우고 있는 주원(9세·가명)이의 생계비 신청에 필요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으려고 주민센터를 찾았다가 아이의 가족관계등록부(호적)가 폐쇄된 상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도 벌써 몇 년 전 일이었다.

임 원장은 놀랐지만 방법이 퍼뜩 떠올랐다. 사회복지사로 40년을 일하면서 숱하게 성과 본을 창설하는 작업을 해봤기 때문이다. 직원도 “원장님이 (주원이의) 후견인으로 지정돼 있으니 호적을 살리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았다.

[123RF]
어느 날 끊겨버린 아빠와의 고리

주원이는 동거하던 미성년자 커플 사이에서 태어났다. 친모 A씨와 남자친구 B씨는 출생신고서의 부모 란에 서로의 이름을 적었다. 주원이는 B씨의 성인 ‘이 씨’를 따랐다. 법적 혼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친모가 동의하면 친부로 등록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머지않아 소원해졌다. 홀로 여관을 전전하며 살던 A씨는 군에서 제대한 B씨에게 주원이를 맡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B씨는 양육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아이를 일시보호소로 보냈다. 이후 주원이는 임 원장이 운영하는 부산 강서구의 보육원으로 옮겨졌다.

주원이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평소 자신을 닮지 않은 아들을 의심스럽게 여겼던 B씨는 법원에 주원이가 친자가 아님을 확인해 달라는 ‘친생자관계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유전자 검사는 두 사람이 한핏줄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법원은 부자의 친자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2013년 8월 확정했다. 주원이의 존재는 B씨의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지워졌다. 출생신고 자체가 무효가 된 것이고, 이를 근거로 만들어진 가족관계등록부도 휴지조각이 된 셈이다.

[123RF]
공적장부에서 사라진 이름…위태로운 유령 아동

주원이의 가족관계등록부가 말소됐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공적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유령아이’가 됐기에 의료보험, 사회복지 등 다양한 공적 지원체계에서 배제됐다. 원장 임모 씨는 “행정시스템에서 기록이 삭제되자 주원이 앞으로 나오던 각종 보조금 지급이 중단될 위기였다”고 말했다.

주원이를 다시 기록에 올리는 절차는 간단치 않았다. 주원이를 낳은 친모의 존재 때문이었다. 임 원장이 시설장의 권한으로 가정법원에 성본 창설을 신청한 것은 작년 8월 이다. ‘친생자관계부존재 판결문’을 첨부하라는 보정 명령으로 어렵게 서류까지 구해 제출했다. 그러나 가정법원은 3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친모가 있으므로 성본 창설을 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친모가 직접 가족관계등록 창설 신청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친모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구청·동주민센터·법률구조공단에 물어도 친모의 흔적을 알 길이 없었다.

[일러스트=권해원 디자이너]
엄마 찾았지만 ‘거주지 불명’…8개월 만 출생신고

보육원이 애를 먹고 있던 와중에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 박진한 아동보호 전담요원이었다. 아동 지원 사업인 ‘드림스타트’에서 9년간 경력을 쌓았던 박 요원은 작년 10월 강서구청에 배치됐고 관내 보육시설 현황을 살피던 중 주원이의 사례를 알게 됐다.

박 요원은 일단 친모와 접촉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가족관계증명서에 적힌 친모의 주소지로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는 공문을 보냈다. 2주 후 “현재 (친모가) 거주하고 있지 않다”는 집 주인의 답변을 받았다. 박 요원은 “친모의 거주를 말소하면 주민등록부가 폐쇄되고, 친모의 존재가 사라져 지자체 직권으로 아이의 성본 창설을 할 수 있다”며 1달 내내 집 주인을 설득했다. 그럼에도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주원이의 외삼촌(친모 남동생)과 연락이 닿았다. 외삼촌은 친모와 박 요원을 연결해 줬다. 어렵게 찾은 친모가 건넨 첫 말은 “(자신이) 왜 출생등록을 해야 하느냐”였다. 박 요원은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 아이가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설득했다. 결국 친모의 도움을 받아 주원이의 출생신고를 완료했다. 지난 2월 16일이었다.

박 요원은 “구청 도움 없이 시설에서 출생신고를 진행했다면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라며 “주원이처럼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을 인지해도 참고 매뉴얼과 자문 기관이 없어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찾아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아동보호전담요원이 유사한 사례를 접했을 때 지역별로 자문할 수 있는 체계가 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
엄마가 지어준 낯선 이름, 언젠간 불러줄까요?

주원이는 8개월 만에 존재를 다시 인정받았지만 이름은 바꿔야 했다. 친모의 성씨를 따랐고 이름 한 글자도 바꿨다. ‘이주원’에서 ‘박준원(가명)’이 됐다. 주원이는 줄곧 이름을 바꾸고 싶지 않아 했다. 취재팀은 지난달 부산을 찾아 주원이를 직접 만났다. “새로운 이름이 마음에 드냐”는 기자의 질문에 주원이는 장난기 배인 목소리로 “아뇨”라고 했다.

하지만 출생신고에 도움을 준 어른들은 주원이가 이름을 바꾼 뒤에 “성격이 더 밝아졌다”고 말했다. 자기를 ‘낳아준 엄마’가 어딘가 살고 있단 사실을 처음 알았고 큰 자극이 됐다. 임 원장은 “뿌리를 알았기에 마음이 가벼워 보인다. 엄마의 존재를 알기에 언젠간 엄마가 찾으러 올 것이라는 기대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뿐 아니라 수영과 탁구에도 빠져 쾌활하게 지내고 있다.

주원이는 기자와의 만남이 쑥스러운지 줄곧 바닥을 내려다보면 발을 흔들었다. 그러다 엄마 얘기가 나오자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치곤 했다. 엄마가 보고싶진 않은지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도 알아요. 엄마가 안 올 거란 거.”

출생신고가 완료되고 일주일 후. 친모는 박 요원에게 “감사하다”고 연락했다. “언젠가 날을 잡아 (주원이의) 할아버지와 함께 주원이를 보러가겠다”며 “아마 2월 말이나 3월 초에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 요원도 “꼭 와달라”며 반갑게 화답했다. 주원이는 아직까지 친모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nyang@heraldcorp.com

dodo@heraldcorp.com

궁금했습니다. 왜 출생 사실이 기록되지 않은 아이들이 끊임없이 등장할까. 출생신고는 하나의 행정적 절차이지만, 동시에 세상에 난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누릴 아동의 권리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최소의 권리에서 비껴난 아이들은 존재합니다. 우린 그들을 ‘유령아이’, ‘투명아동’, ‘그림자 아이들’ 이라고 부릅니다.
헤럴드경제는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 출생 미등록 아동의 사례를 수집했습니다. 온통 ‘어른들의 이유’들로 아이의 출생신고는 미뤄지거나 무시된 걸 확인했습니다. 취재팀은 개별 사례의 특수성에 매몰되기보다는, 보편적인 배경과 제도적 모순을 발견하려 애썼습니다. 그간의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4부에 걸쳐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기획보도는 ‘누락 없는 출생등록,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을 목표로 활동하는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UBR Network)와 함께 조사하고,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합니다.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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