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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사에 말만 앞세운 지구촌...‘실패한 국가’의 길 접어든 미얀마 [글로벌 플러스-미얀마 쿠데타 3개월...국제사회 민낯]
이어지는 유혈참사...정부의 통치능력 상실...
유엔은 실효없는 규탄성명만...군부에 영향 못줘
美, 의례적수준 제재 목소리...구체적 개입 소극적
中·러, 주도권 확보위해 참혹한 인권유린 눈 감아
저항 시민들 전면파업에 경제 역시 파탄 수준
경제성장률, 세계은행 -10%·피치 -20% 예상
시민도 ‘무장투쟁’ 내전 국면...난민 발생 불가피
아세안 적극 개입 의지...중재 역할에 ‘실낱희망’
지난 12일 양곤에서 시민들이 유엔(UN)이 미얀마에 대해 ‘보호책임의 원칙(R2P)’을 발동하라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지난 3일(현지시간)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군부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직접 제작한 총기를 들고 무자비한 폭력 진압을 하는 군경과 맞서고 있다. [로이터]
지난 11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에서 재일 미얀마인들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와 그들의 뒷배로 알려진 중국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EPA]

“지금 세계가 미얀마에서 보는 장면은 어느 한 국가의 민주주의가 처절하게 후퇴하는 것만으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느리지만 완전히 ‘실패한 국가(failed state·정부가 통치능력을 상실하여 국가로서 일체성을 유지하기가 힘든 국가)’로 변모하는 모습을 함께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는 ‘다가오는 미얀마의 재앙: 실패한 대응이 실패 국가로 이끈다’는 제목의 최근 기사를 통해 미얀마 사태를 다루는 국제사회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민주주의 파괴를 규탄하지만, 실효성 없는 제재 폭탄만 쏟아내며 적극 개입을 망설이는 서구 국가들, 경제적·지정학적 주도권 확보를 위해 군부의 참혹한 인권 유린에 눈 감는 중국과 러시아 등의 태도는 미얀마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비록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 정상들이 모여 미얀마 내 폭력 중단이란 합의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선언에 불과하고, 향후 구체적 조항에 대한 협상 과정에서 언제든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미얀마의 현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신냉전’으로 불리는 패권 경쟁을 겪으며 자국 우선주의의 중요성을 깨달은 국제사회가 더 이상 전 지구적인 이슈로 떠오른 지역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능력은 물론, 의지가 없다는 그동안의 지적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미얀마 사태, 유엔에 대한 사망 선고일지도”=수많은 전문가는 미얀마 사태가 무능한 국제기구의 민낯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특히 외신들은 미얀마에서 끔찍한 유혈 참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유엔(UN)의 무기력한 모습 더 두드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AFP 통신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미얀마 사태에 대해 규탄 성명을 수차례 내고 있지만 미얀마 군부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유엔이 말로만 비판을 되풀이하면서 미얀마 군부의 학살을 막을 실효성 있는 조처를 내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지닌 중국과 러시아가 미온적 태도를 견지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얀마 군부를 겨냥한 노골적 비판과 경제·군사적 제재 가능성을 담은 성명 초안들은 번번이 삭제됐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온라인 공개 토의에서 미얀마 유혈사태를 막기 위한 ‘보호책임의 원칙(R2P·특정 국가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를 때 주권을 무시하고 국제사회가 군사·경제·외교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원칙)’ 발동을 안보리가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현실적으로 공허한 외침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美中, 패권 경쟁 ‘완충지’ 놓고 눈치만=미국과 중국도 자국의 이익에 한없이 충실하고 있는 모습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민주주의 동맹의 맹주로 귀환하겠다는 뜻을 강력 천명한 미국도 목소리만 클 뿐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해 직접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얀마에 대한 압박의 강도와 빈도 역시 중국을 신장(新疆) 위구르 인권 문제로 공격하거나 러시아를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독살 시도·투옥 등으로 연일 몰아붙이는 것에 비하면 의례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동맹국인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이 미얀마 군부를 향해 가하고 있는 경제적 제재 역시 사실상 효과가 전무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연구진이 미얀마에 가해진 서방 국가들의 제재 200건 이상을 평가한 결과 3분의 1만이 부분적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됐다.

같은 자료를 두고 연구를 진행한 다른 연구진들은 PIIE의 기준이 너무 관대하다며 제재의 성공률을 5% 미만으로 꼽기도 했다.

국제분쟁 연구기관 국제위기그룹(ICG) 미얀마 담당 선임고문 리처드 호시는 “불균일한 압박은 군부의 변화를 강요하기엔 불충분하다”며 “군부를 움직일 지렛대는 없다”고 한탄했다.

쿠데타와 저항 시민에 대한 폭력도 ‘내정’이라며 연일 불간섭을 강조하는 중국은 자국의 경제적, 지정학적 이익을 챙기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벵골만에서 중국으로 석유와 가스를 곧장 운반할 수 있도록 완공된 송유관 보호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지난 2014년 군부 세력과의 결탁을 통해 미얀마 짜욱퓨에서 중국 쿤밍(昆明)에 이르는 총연장 2806㎞의 송유관을 완공, 미 해군이 장악한 말라카해협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에너지 수송로를 확보했다.

실제로 중국은 군부와 맞서고 있는 민주진영 임시정부 측과 접촉하면서도 중국인 및 중국 투자시설의 안전이 우려된다는 발언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폭력 사태로 인한 인권 유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은 분명히 한 것이다.

여기에 중국은 미얀마를 ‘우호적 완충지’로 삼아 미국 주도의 중국 포위망 ‘쿼드(Quad)’에 참가한 인도와의 힘의 균형을 유지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 붕괴·내전 국면 진행 속 아세안 역할에 기대= 그동안 소셜미디어(SNS)와 외신 등을 통해 국제 사회의 도움을 요청해온 저항 시민들도 반군과의 연대를 통한 무장 투쟁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모양새다. 2011년 민주화 이후 성장과정에서 민주주의를 맛본 20대가 앞장서고 있다.

저항 시민들의 전면 파업으로 미얀마 내 공급망과 생산망이 무너지며 경제 역시 파탄 수준에 이르고 있다. 세계은행은 올해 미얀마의 예상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10월 5.9%에서 -10%로,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기존 5.6%에서 -20%로 내다봤다.

내전이 본격화될 경우 주변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각종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대규모 난민의 발생으로 동남아 국가들의 부담과 혼란이 가중될 수 있고,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과거 성행했던 마약 밀거래까지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다만, 그동안 회원국에 대한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던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이 미얀마 사태에 적극 개입, 군부와 민주 진영 모두 중재 역할을 받아들이기로 한 점은 미얀마 사태에 분수령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세안은 지난 2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특별정상회의에서 ▷미얀마의 즉각적 폭력 중단과 모든 당사자의 자제 ▷국민을 위한 평화적 해결책을 찾기 위한 건설적 대화 ▷아세안 의장과 사무총장의 특사 형식 대화 중재 ▷인도적 지원 제공 ▷특사와 대표단의 미얀마 방문이란 5개항을 합의, 발표했다.

이날 정상회의에 미얀마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이 직접 참석했고, 군사정권의 대척점에 선 국민통합정부(NUG)도 일단 환영의 뜻을 표했다는 점도 주목할 지점이다.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민주진영의 핵심 요구 중 하나였던 정치범 석방 부분이 합의 사항에 포함되지 않았고, 의장 성명에는 그런 요구가 있었음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이다. 향후 대화 모색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점이다.

게다가 군부의 합의 이행을 강제할 방법이 여전히 없다는 점도 큰 문제다.

실제로 SNS 상에는 합의에도 미얀마 군경의 실탄 발포와 체포, 구금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연이어 전해졌다.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는 “폭력을 중단하고 정치범들을 석방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해내는 것은 별개이고, 정치적 해결책에 도달하기 위해 포괄적 토론을 하는 것은 더 어렵다”며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신중론을 폈다. 신동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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