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일본에 처음 거주할 때 집집마다 멋진 개를 키우고, 동네 산책을 시키는 일본인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반려견용 옷·장난감·간식 등 다양한 펫상품을 보고 더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남아 있다. 개가 정말 대접받는 사회라는 느낌이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반려견을 키우는 가구가 600만을 넘는다.
지난해부터 일본에선 ‘소년과 개(원제 少年と犬)’라는 소설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나오키(直木)상’ 2020년 수상작이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으로 주인을 잃고 일본열도를 여행하는 떠돌이개와 보통사람들의 삶을 담은 내용이다. 요즘 같은 출판 불경기에 30만부나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책은 주인공 ‘다몬’이 강아지 때 함께 놀던 소년을 5년에 걸쳐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반려견판 ‘엄마 찾아 삼만리’인 셈이다.
다몬은 오늘날 일본을 구성하는 여러 군상을 만난다. 주인공들은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대지진으로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위해 범죄집단의 하수인으로 가담하는 남자, 이국 땅에서 단기간에 큰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둑질을 하는 외국인, 능력 있는 부인과 갈등하며 사는 무능한 남편, 건달 남자친구를 위해 몸을 팔고 망가져 가는 매춘부 여인, 그리고 산속에서 혼자 쓸쓸하게 노후를 보내는 사냥꾼 노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수레바퀴에 눌려 하루하루를 견디다가 생을 마감한다. 그때마다 다몬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의 위안을 전해주는 구세주 역할을 한다. 다몬은 이와테현에서 구마모토현까지 수천리를 달려 5년 만에 어릴 적 친구를 찾아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소년은 위안을 받고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 말문을 연다. 그러나 소년과 개의 달콤한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구마모토 대지진이 터져 집이 무너지자 다몬은 소년을 구하고 세상을 떠난다.
저자 하세 세이슈는 책을 통해 “인간은 주인을 배반하는 경우가 있지만 개는 절대로 키워준 가족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요미우리신문은 “작가가 풀어내는 개와 인간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라며 “어리석은 인간에 비하면 개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스승 같은 존재”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독한 현대인의 인생을 풀어냈다는 느낌이 든다. 실업과 취업난, 고독과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바로 우리 이웃들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특히나 일본은 끊임없는 지진의 피해와 공포를 안고 사는 나라다. 일본인들의 삶은 누구나 대지진과 쓰나미의 충격을 극복해야 하는 처절한 생존투쟁이다. 한없이 어리석은 인간은 그 과정에서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는다. 여기에다 장기 침체와 코로나 사태까지 겹쳤다. 지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좀처럼 종식되지 않으면서 경제난과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소년과 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한 인생일지를 성찰하는 기회를 준다.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