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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아이처럼 담백한 그림 한국전쟁 아픔 ‘치유’ 담아
오세열 개인전 ‘은유의 섬’ 학고재갤러리
오세열무제 Untitled2016-2020함지박에 혼합매체, 53x45cm

샛노란 화면에 1부터 10까지 숫자가 계속 반복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숫자 사이 까만 토끼와 낡은 창문, 작은 산과 바람이 자리잡았다. “작업실 근방 용문사에서 은행나무 잎이 바닥에 한가득 떨어져 있더라고.... 그때 그 모습이 기억에 남아 이를 소재로 그렸지”하는 작가의 설명이 따라온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처럼 담백한 그림이다. 올해로 77세, 현대미술작가 오세열의 작품이다.

현대미술작가 오세열의 개인전이 4년만에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다. ‘은유의 섬’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전시엔 작가가 낙서하듯, 소꿉장난하듯 그려낸 작품 20여점이 나왔다. 일견 어린아이가 슥슥 그린 그림처럼 보이지만, 한 점 쉬운 그림이 없다. 바탕은 서너가지 색을 혼합하고 또 여러번 물감을 올린다. 날카로운 칼이나 못으로 긁어 형상을 만든다. ‘흑판에 낙서하듯’ 그린 선은 도루코 칼날로 세밀하게 파낸 것이고 꽃 모양으로 붙은 오브제는 길거리에서 주운 전단지를 오려서 붙였다.

작가 설명대로 “쓸모가 없다고 버려진 것들에게 쓸모를 찾아주는 작업”이다. 작가는 화면이 자신의 몸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작품은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내는 행동인 셈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도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다. 한쪽 팔이 없거나 눈이 없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그러한 이웃을 많이 봐왔던 작가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마음이 아픈 현대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작품을 보면서 위로와 치유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오세열 작가는 시장에서도 인기가 좋은 작가다. 어린아이 낙서와 같은 그림에서 느껴지는 순수함과 동심이 여러사람의 공감대를 얻었다. 작가는 “일부러 못그리려고 노력한다”며 “내 생각이지만, 너무 잘 그린 그림은 좀 질리지 않냐?”며 반문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림을 하다보면 숙련이 되서 기술자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럼 결과물이 가벼워진다. 이때 작가들은 경계해야한다. 겉절이보다 묵은지가 맛있듯이 그런 그림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중국 명대 사상가인 이지(李贄)는 후천적 세속적인 것에 일체 오염되지 않은 동심만이 인간의 본래성을 상징한다고 봤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성인의 그것과 같다는 것이다. 오세열의 작업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동심에 가까이 다가간다. 동심을 찾아가는 여정처럼, 전시는 5월 5일까지 열린다. 이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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