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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레기 더미' 아니죠…수 억 원 예술작품
바라캇 컨템포러리, '삭제의 정원'전
영국 설치작가 마이클 딘 첫 한국전
영락없는 폐허, 그러나 찬찬히 보면 글자가 보인다. HAPPY, BONES, SADS, WITH, STICKS, AND, STONES 등 알파벳 텍스트가 숨어있다. 마이클 딘 '삭제의 정원' 전시전경. [사진제공=바라캇 서울]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온갖 잡다한 건축 잔해들이 펼쳐진다. 콘크리트 덩이들, 녹슨 철골 골재, 시멘트 덩이를 담아 터질것 같은 비닐 봉지, 동물 뼛조각, 찢어져 돌아다니는 책 등 영락없는 폐허다. 발 아래를 조심하며 걸어야하는 이 이상한 '쓰레기 더미'는 영국 조각가 마이클 딘(44)의 설치작 '삭제의 정원'이다.

서울 종로구 바라캇 컨템포러리는 마이클 딘의 첫 한국전 '삭제의 정원'을 개최한다. 2017년 독일 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서 선보여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시리즈다. 관객들은 이 의도된 폐허를 걸어다니며 작품을 경험하게 된다. 튀어나온 손 부조와 맥락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색, 도처에 널린 텍스트들이 어지럽다. 영국 일포드에 위치한 작가의 작업실에서 출발했다는 '삭제의 정원'은 정원 여기저기 널려있는 콘크리트 조각이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며 자연과 주고 받는 에너지의 변화를 상징한다. 꽃이 피고 지고, 또 다른 생명이 돋아나는 정원처럼 그의 콘크리트 조각도 탄생과 소멸을 동시에 상징한다.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X'시리즈는 콘크리트 혀 위에 발화한 조각이다. 바닥에 누워있는 작품들과 달리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듯 똑바로 서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혀는 발화의 근육"이라며 "언어가 있기 전에 혀는 친밀함과 소통을 담당했다. 프렌치 키스를 떠올려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콘크리트에 갖힌 채 밖을 향해 뻗어나는 손들은 다양한 제스쳐를 품었다. 행운을 빌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하고, 사랑한다고 하기도 하고, 승리를 외치기도 한다. 소리없이 아우성치는 메시지를 지탱하고 있는 건 한 덩이의 콘크리트 혀다.

콘크리트라는 재료는 마이클 딘 작업의 주요 축이다. 생활이 그닥 부유하지 못했던 작가는 가장 싸고,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콘크리트를 그의 작업 재료로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가난은 나를 설명하는 키워드"라는 작가는 지금도 콘크리트를 쓴다. 한국에 들어와서 자가격리기간동안 인간과의 교류가 너무나 간절해, 입술에 올리브유를 바르고 종이에 키스 한 뒤 시멘트 가루를 뿌려 평면작업을 완성했다. 작가는 콘크리트를 '죽음의 먼지'라고 불렀지만, 동시에 현대 산업사회를 지탱하는 '생명의 먼지'기도 하다.

전시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2층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이다. 1층에 쓰레기 더미처럼 널부러져 있는 조각들이 해피(Happy), 브로크(Broke), 본즈(Bones) 등 단어로 배열돼 있다. 먼저 보이는 글자가 자신의 심리상태를 반영한다는 온라인 상의 심리테스트처럼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가 머릿속을 쉽게 떠나지 않는다. 전시는 5월 30일까지.

vicky@heraldcorp.com

마이클 딘, X Fuck (Working Title), 2021, 콘크리트, 철, 종이책, 192 x 64 x 73 cm [사진제공=바라캇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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