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 8인 각 분야 검검 및 제안
코로나위기는 곪은 곳 치유 적기
함께 살아가는 '라이피즘' 제안
복지도 디지털생태계에 맞춰야
청년기본소득으로 일자리 해결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그 핵심에는 ‘복지’가 있습니다. 먼저 복지 개념을 잘 정립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요지는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공동구매’라는 겁니다.(…)우리 모두 세금을 내서 교육, 주거, 노동, 의료 등의 복지를 공동으로 구매하는 개념인 거죠.”(‘코로나 사피엔스’에서).연합뉴스 |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에게 닥친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예민하게 감각하는 지식인들의 통찰을 보여주는 책 출간이 이어지고 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김누리 중앙대 교수, 홍기빈 칼폴리니경제연구소장 등 8명의 석학들이 참여·집필한 ‘코로나 사피엔스’(인플루엔셜) 역시 우리 사회 각 분야를 돌아보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김누리 교수의 한국 사회 진단은 냉혹하다. “한국사회의 자화상은 연대와 포용이 결여된 사회, 다시 말해 ‘사회가 없는 사회’”라며, ‘사회적인 것’이 불온한 것으로 여겨지고 심지어 진보 정당에서조차 ‘사회적’이란 표현을 쓰는 걸 두려워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사회의 연대는 광장에서만 존재한다는 지적은 날카롭다. “광장에서는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들이 학교와 가정, 일터에서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꼰대’가 되는 걸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는 것이다.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반대, 공공의대 설립 반대 등은 연대의 실종을 보여주는 사례로 지목된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사회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교훈을 알려주었다”며, “이 교훈에서 출발해 이제 한국사회는 경쟁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존엄과 연대의 공동체주의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자도생에서 모두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서 그린으로, 불평등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삶을 강조하는 ‘라이피즘(lifism)’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선직국의 허상과 ‘정부 개입은 적을 수록 좋다’는 도그마,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의 한계가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지금 겪고 있는 변화는 단기간에 그치지 않고 큰 물줄기를 형성하며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 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 위기를 심화시킨 핵심요인으로 그는 복지 제도의 취약점을 든다. 실업자, 생계형 자영업자, 돌봄 노동자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다.
장 교수는 사회영역에서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보편적 복지·의료·노동권을 강화하는 복지국가로 갈 수도, 도리어 소위 1퍼센트의 승자독식사회로 갈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인 지금이 곪은 상처를 터트리고 치료할 수 있는 적기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금융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 규제를 너무 풀어서 문제가 생긴 곳이 없는지 되돌아 볼 때라는 지적이다.
그는 보편적 복지가 기업가와 노동자를 위한 사회적 완충장치로 작동할 경우, 새로운 경제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홍기빈 소장은 지난 40년간 유지· 발전해온 ‘글로벌 생산체인’이라는 전 지구적 분업체제, 가치사슬이 전면적으로 재편될 조짐을 보이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반도체의 경우, 가치사슬이 붕괴되고 미·중무역전쟁으로 한국의 반도체 시장은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홍 소장은 “팬데믹은 도시화, 금융화, 대의제 민주주의마저 흔들어놓았다’며, 이제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경제와 경제정책은 통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위기극복을 위한 뉴딜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새로운 발상과 과감한 상상력, 파격적 시도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플랫폼 산업시대의 변화에 주목한다. 최 교수는 플랫폼 산업의 혈액은 데이터로, 이를 활용해 솔루션을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경제에서 기존의 경제셈법으로는 플랫폼산업을 발전시키기 어렵다고 말한다. 데이터의 개방과 공유, 소통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플랫폼 생태계는 제조업 생태계와는 전혀 다른 생태계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정부의 코로나 극복 뉴딜을 보면, 여전히 제조업 생태계의 프레임에서 접근하고 디지털 생태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사업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최 교수는 이와함께 한국 사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청년 실업률을 꼽는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플랫폼 산업이 발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다. 디지털생태계 구축의 주축인 MZ세대는 당장 생계 때문에 자신이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현실이다. 이는 국가적 손실로, 이들이 데이터와 아이디어를 결합해 새로운 플랫폼 사업모델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일정 생계비를 지원하는 청년 기본소득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본격적으로 그린뉴딜을 중심으로 한 친환경 사업이 광범위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린뉴딜은 화석 연료 중심의 산업 구조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 에너지 정책의 기조 뿐 아니라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놓게 된다. 국가뿐 아니라 기업들도 이 흐름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기업과 국가에 생존이 달린 사안이다. 홍 교수는 경제와 환경의 선순환이 불가능하다는 우리의 인식을 제고하고 친환경 졍제의 성장으로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산업에 대한 재정 및 교육훈련을 지원하는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은 코로나19팬데믹의 혼란에서 벗어나 어느정도 조망할 수 있는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변곡점을 맞아 수술이 필요한 환부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코로나 사피엔스/김누리, 장하준 외 지음/인플루엔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