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배 한척에 막힌 바닷길...수에즈사태가 불러온 ‘퍼펙트 스톰’ [글로벌 플러스-물동량 압박받는 국제해운업계]
‘코로나19’ 충격 줄어든 선박 운임인상으로 이어져
물동량 급증·수에즈 선박 좌초 겹쳐 운송망 ‘패닉’

피해업체 손실보상금·컨테이너선 피해 보상까지
천문학적 보험금 공방...지급까지 수년 소요 예상

선박인양 성공했지만 정상적 운용 상당기간 소요
수억원 추가비용 감수 ‘희망봉’ 우회노선 택하기도

팬데믹 상황 발생 사고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물동량 회복하던 해운업계 ‘찬물’...세계경제 비상
‘에버 기븐’호가 좌초돼 수에즈 운하 통과가 불가능해지자 후속 선박들이 대기한 채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EPA]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좌초됐던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Ever Given)’호가 30일(현지시간) 앞뒤로 예인선에 연결돼 이동하고 있다. 수에즈운하관리청(CSA)은 에버 기븐호의 재부양으로 7일 만에 수에즈 운하 통항을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UPI·AP]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침체에 빠졌던 세계 경제가 최근 회복세를 보이면서 해상 운송량이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수에즈 운하 컨테이너 선박 좌초 사태로 오래만에 활기를 되찾던 글로벌 해운업계의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행히 사고 엿새만인 29일 좌초 선박의 인양은 성공했지만 수에즈 운하의 정상적인 운용까지는 상당기간 더 필요한 상황이어서 급증하는 해상 운송에 차질이 예상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사태 전부터 수에즈 운하 등 세계의 주요 해상무역 요로가 갈수록 더 큰 압박감에 시달려왔다”면서 “해상 물동량이 계속 급등세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싱크탱크 차탐하우스에 따르면 해상 물동량은 2010년 84억t에 달했는데, 2019년 111억t으로 늘었다.

또 지난해 코로나19로 물동량이 급감하긴 했지만, 올들어 회복세를 보이면서 미 주요 항구는 코로나19로 인한 항만 노동자 부족, 무역 불균형에 따른 컨테이너 부족 등의 문제를 겪고 있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해상물류의 핵심 통로인 수에즈 운하가 막히면서 글로벌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안겼다.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는 길이가 190㎞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운하다. 아프리카 대륙을 우회하지 않고 곧바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글로벌 교역의 핵심 통로다.

지난해 기준 약 1만9000척, 하루 평균 51.5척의 선박이 이 운하를 통과하며 전 세계 교역량의 12%를 담당했다. 이 운하가 막히면 일반 상품뿐 아니라 원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운송도 차질을 빚는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하는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수에즈 사태, 코로나19 이전 회복 시기 늦춰”=월스트리트저널(WSJ)은 “수에즈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하는 시기는 더 늦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좌초로 극적인 반전이 초래됐다”면서 “코로나19로 침체됐던 해운업계가 최근 다시 빠른 속도로 살아나고 있었는데, 수에즈 사태로 혼란에 빠졌다”고 덧붙였다.

대만 에버그린이 선사, 일본 쇼에이 기센이 선주인 ‘에버 기븐(Ever Given)’호는 23일현지시간) 선수 부분이 수에즈 운하 모래 제방에 박힌면서 좌초했다. 중국 상하이를 출발해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향하던 길이다.

길이 400m에 달하는 이 초대형 선박이 수에즈 운하를 가로막으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수백여척의 선박 운항이 중단됐다. 29일 정상 항로로 복귀할 때까지 세계 해상 운송망은 ‘패닉’에 빠졌다. 인양은 성공했지만 수에즈 운하가 정상 운영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해운정보업체 로이즈리스트 분석에 따르면 수에즈 운하 운영 중단으로 매일 90억달러(약 10조2000억원) 어치 화물의 운송이 차질을 빚었다.

피해업체들은 보험사를 상대로 손실 보상을 청구해 수억달러의 보상금을 청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사는 다시 에버 기븐호 선주에 손실 보상을 요구할 수 있고, 선주는 다시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는 등 이해당사자 간의 책임 전가가 예상된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자체 피해 보상 여부도 주목된다. 통상 이런 초대형 선박은 1억~2억달러(약 1100억~2300억원) 정도의 보험금이 보장된 보험에 가입하는데, 실제 보험금은 피해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에버 기븐호의 프로펠러가 모래 제방에 박힌 점을 감안하면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천문학적 보험금 지급을 놓고 보험 지급 절차가 완료되기까지 수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고의 책임 공방에서 수에즈 운하 당국은 빠져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망했다. 수에즈 운하 항해 규정에 따르면 수에즈 운하 측 도선사가 사고 선박에 탑승해 있었지만,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은 선주에게 귀속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구난업체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네덜란드 업체 ‘스미트 샐비지(SMIT Salvage)’는 배와 화물의 가치를 토대로 성공 보수를 받는데, 에버 기븐호의 경우 수억달러에 달할 수도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에버 기븐호가 초래한 글로벌 교역 장애로 인한 손실은 보상이 가능할지조차 불투명하다.

수에즈 운하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을 도는 우회 노선을 택한 선박들은 에버 기븐호 선주 등에 추가 비용을 요청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사고 직후 세계 주요 해운회사들은 희망봉 우회 노선을 적극 검토했고, 일부 선박은 희망봉으로 키를 돌렸다.

해운업계 국제 동맹인 빔코(발틱국제해운거래소)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 로테르담으로 이동하는 선박이 수에즈 항로를 택하면 8301해리(약 1만5373㎞)에 그치지만, 희망봉 항로로는 1만1758해리(약 2만1775㎞)를 가야 한다. 항로 왕복에는 수에즈 항로가 34일, 희망봉 항로가 43일 걸린다. 수에즈 운하 대신 희망봉 항로를 택하면 노선 거리가 약 6000㎞ 늘어나는 셈이다.

추가되는 연료 비용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희망봉 항로를 택하면 대형 유조선이 중동 원유를 유럽으로 운송하는데 드는 연료비만 30만달러(약 3억4000만원) 추가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손해에도 일부 선박들이 희망봉 우회를 택한 이유는 운송 지연에 따른 손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선박 운항이 하루 지연되면 선주는 대략 6만달러(약 7000만원)의 손해를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는 소매업자에 퍼펙트스톰...이보다 나쁠 수 없다”=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 당국은 시대 변화에 맞춰 수용능력을 확장해왔지만, 해운 물동량의 가파른 증가와 컨테이너선의 초대형화 트렌드에 빠르게 발맞추진 못했다.

이집트 당국은 2015년 80억달러(약 9조원)를 들여 수에즈 운하 확장공사를 완료했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 확장공사가 완료됐다.

수에즈 운하가 아프리카 우회 항로를 극적으로 단축시켜주는 항로라면, 파나마 운하는 남미대륙 우회로를 단축시켜주는 핵심 항로다. 약 1만㎞의 이동 거리를 줄여줘 효율성 면에서는 수에즈 운하를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물류업체 ‘OL USA’의 앨런 배어 대표는 아시아에서 미국 동부로 들어오는 물류의 3분의 1은 수에즈 운하, 나머지 3분의 2는 파나마 운하를 통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파나마 운하를 오갈 수 있는 선박 크기의 최대치 기준 ‘파나맥스’는 초기에 길이 294m, 폭 32.3m였다. 확장공사 끝에 길이 366m, 폭 49m의 ‘신파나맥스(Neo-Panamax)’로 기준도 확대됐다.

2018년 건조된 에버 기븐호는 당시 기준에서 ‘수에즈맥스’의 최대치로 여겨졌다. 폭 59m, 길이 400m, 총중량 22만123t에 6m 컨테이너 2만2000개를 실을 수 있는 선적용량 22000TEU로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에 등극했다.

수에즈맥스란 수에즈 운하를 지날 수 있는 선박의 크기 기준이다. 길이 400m, 폭 77.5m를 넘지 않아야 한다. 이에 따라 세계 해운사와 조선사들은 대부분 수에즈맥스급 기준 이하로 선박을 주문하고 제작한다.

다만, 현재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타이틀은 지난해 출항을 시작한 한국 해운사 HMM의 알헤시라스호로 넘어왔다. 알헤시라스호는 길이 400m, 폭 61m, 총중량 22만462t, 선적용량 24000TEU로 에버 기븐과 비교해 거의 모든 면에서 앞선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급인 에버 기븐호가 초래한 이번 재앙에 전 세계는 식은 땀을 쓸어내리고 있다.

물류업체 세코(SEKO)의 브라이언 버크 최고성장책임자(CGO)는 이번 사고가 소매업자들에겐 ‘퍼펙트 스톰(여러 재앙이 동시에 닥치는 현상)’이라면서 팬데믹 와중에 발생한 이번 사고의 시점이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더글라스 켄트 미 공급망관리협회(ASCM) 부회장은 “좌초된 선박을 빼내 수에즈 운하를 다시 개통하게 된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거기서 끝날 일이 아니다”라면서 “이번 사고로 항구 적체는 계속될 것이고, 그로 인해 해상운송 시스템에는 혼돈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한 기자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