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Environment·Social·Governance)를 새로운 경영 방침으로 속속 강조하면서 대형로펌들도 자문 시장 선점을 위한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대형로펌들은 ESG가 투자자의 관점에서 시작된 만큼 각 기업들이 주주를 비롯한 투자자의 요구를 정확히 분석하고, 오너를 비롯한 경영진이 ESG 이슈를 세밀하게 알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24일 변호사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ESG라는 용어가 보다 빈번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대기업들이 공개적으로 ‘ESG 경영’을 내세우면서부터다. 대표적 인물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공개석상 등에서 ESG 경영을 강조해온 최 회장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취임 후 전국상공회의소 회장 상견례 자리에서 ESG 경영 협력을 제안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한국을 ESG 1등급으로 평가한 사실을 언급하며 “정부뿐 아니라 우리 기업들이 사회책임 투자와 지속가능 투자를 강화하는 등 변화하는 시대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얻은 매우 의미 있는 결과”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민호 법무법인 율촌 ESG 연구소장은 “ESG가 투자자의 관점에서 시작이 됐는데 점점 일반화되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ESG 경영에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이라며 “경쟁기업을 비롯한 경제계 전반이 ESG 경영을 공개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그 흐름을 놓치면 사실상 감점 요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SG라고 하면 여전히 친환경, 사회적 가치, 투명한 지배구조를 중요시하는 ‘착한 경영’ 정도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형로펌들은 ESG의 범위가 더 넓고 포괄적이어서, 각 기업들과 경영진이 ‘막연한 열거’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부터가 지속가능한 경영의 해답을 찾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 소장은 “그동안은 이를테면 환경쪽 리스크가 있는 부분에 대해 자문을 따로 주고 받았다”며 “이제는 ESG라는 통합적 관점에서 살펴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화우 ESG그룹 이광욱 변호사는 “사실 E는 환경 부분에서 규제 법률이 명확한 편이고, S는 이해관계자·협력업체·주주·소비자 등이 명확해 상대적으로 잡히는 부분이 분명하다”며 “G가 사실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ESG경영을 잘하려고 하면 무엇보다 오너의 결단이 가장 중요한데 G는 잡히는 게 없어 등한시되는 면이 있다”며 “기업들이 가장 가려워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우선 위원회 등 관련 조직을 먼저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ESG 관점에서 인식과 목표를 공유하는 조직을 만들고서 경영 방침을 세부적으로 정해야 향후 ESG에 따른 기업 등급화에도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LG그룹은 13개 상장사 이사회 내에 ESG위원회와 내부거래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고, 삼성화재는 이사회에 ESG위원회를 신설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ESG가 비재무적 요소인 사회적 가치들을 넓게 포괄한다는 점에서 기존보다 더 강화된 준법경영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김성우 김앤장 환경에너지연구소장은 “ESG의 근간이 되는 정신은 컴플라이언스라 본다”며 “로펌이 무엇보다 규정의 준수를 돕는 곳인데 결국 기업 평판과 연결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각 기업마다 주주가 다른데, 기업들은 자기 투자자가 ESG와 관련해 뭘 요구하는지 분석할 필요가 있고, 투자자의 요구를 알았으면 의사결정 경영층에서 ESG 이슈를 조금 더 깊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로펌들은 기업들의 ESG 경영선언에 발맞춰 이미 속속 관련 팀을 꾸렸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은 지난해 관련 팀들을 연결해 ESG그룹을 정비했다. 노경식 변호사가 그룹장이며 국제배출권거래협회 이사를 역임한 김성우 소장 등 4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법무법인 광장은 지난해 3월 기존 환경안전팀과 기업지배구조팀의 일부 인원을 통합해 30여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ESG팀을 신설했다. 기업자문 전문가 김상곤 변호사와 설동근 변호사가 공동팀장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기업법무와 환경·에너지 분야 전문가인 이준기 변호사를 팀장으로 20명 규모의 ESG 대응팀을 지난해 10월 구성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지난해 말 이경돈 변호사를 팀장으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원장 출신 이용국 고문, 환경 분야 전문가인 황성익 변호사 등이 참여한 ESG 전문팀을 출범했다. 법무법인 율촌은 환경부 환경정책실장 출신 이민호 고문이 소장을 맡는 ESG 연구소를 설립했다. 화우도 지난해 말 박상훈 대표변호사가 그룹장을 맡은 ESG 그룹을 구성했다.

안대용·박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