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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절박’ vs “불편”…LG트윈타워 해고 청소노동자 농성 100일째
트윈타워노조 조합원 등 40여명 22일부터 무기한 텐트 농성 돌입
코로나19 등 이유로 쌍둥이 빌딩 잇는 중앙 로비 출퇴근시간 폐쇄
노동자들 “찌뿌리지 않는 직원들 고마워…일하던 데에서 계속 일하고 싶을 뿐”
‘보안 강화’ 직원들, 출퇴근마다 긴줄…“평소보다 건물 오가는데 10분 더 걸려”
사측 “농성중 청소근로자 전원 LG마포빌딩 고용 유지 제안 등 해결 위해 노력”

25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LG트윈타워에서 선전전을 벌이고 있는 해고 청소노동자 앞으로 통근 버스에서 내린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주소현 기자/addressh@heraldcorp.com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1. “어젯밤에는 춥지 않게 잘 잤어요?” 25일 오전 7시30분께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정문 앞 보도에 설치된 40여개 텐트 앞으로 하나둘 모인 청소노동자들은 서로 인사부터 건넸다. 지난 22일부터 4일째 무기한 텐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LG트윈타워지부(이하 노조) 소속 조합원들과 해고자들이다. 이들은 ‘고용 승계 보장하라’, ‘청소노동자 쫓아내면 LG제품도 쫓겨나요’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100번째 출근 시간 선전전을 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2. 같은 시각 LG그룹 한 계열사 직원 김모(40) 씨는 서울 강서구의 집에서 LG트윈타워로 출근했다. 집 근처에 편히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이 없어, 김씨는 지난해부터 우리 나이로 다섯 살 된 아들과 함께 LG트윈타워로 ‘출퇴근’하고 있다. 그는 “아이랑 같이 다니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다 최근 아들의 입에서 들린 노동 가요를 듣고, 김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건물 입구에 있는 노조가 틀어 놓은 노동 가요를 듣고 따라하는 모양”이라며 “다시 집 근처 어린이집을 수소문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날로 고용 승계를 요구하는 LG트윈타워노조의 건물 앞 선전전이 100일째를 맞았다. 노동자들과 해고자들은 “일하던 곳(LG트윈타워)에 계속 일하고 싶을 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사실상 사측인 LG 측과 대화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애초 제안대로 서울 마포구 LG마포빌딩에서 일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출퇴근은 물론 건물을 출입할 때마다 사실상 사원증을 보여 주는 등 ‘검문’을 당하고 있는 LG 직원들도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동자들과 사측 간 대치는 계속되고 있었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한때 일터였던 건물 앞에서 먹고 자며 농성을 하게 된 것은 이들이 지난해 집단으로 해고됐기 때문이다. LG트윈타워의 시설 관리를 맡은 계열사 S&I코퍼레이션이 청소노동자들을 고용한 협력업체 지수아이앤씨와 계약을 종료하면서 길게는 10년 가까이 LG트윈타워에서 일해온 청소노동자 82명은 일자리를 잃었다. 이 중 30명은 지난해 12월 16일부터 고용 승계 촉구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LG트윈타워로 들어가는 8개의 출입구 중 서관 지하주차장·출입구, 동관 출입구·중앙 로비 앞 네 군데에서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을 이유로 LG트윈타워의 서관과 동관을 잇는 중앙 로비의 출입구가 모두 폐쇄됐기 때문이다.

남은 출입구들도 검은 옷차림을 한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이 바리케이드로 막아선 채 일일이 사원증을 확인하며 출입을 통제했다. 출근이 한창이던 오전 8시께에는 동관 출입구 앞에 긴 줄이 생기기도 했다. 청소노동자들은 “건물에 들어가면 이름과 소속을 대게 하고 화장실도 한 명씩만 들어갈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25일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동관 출입구로 들어가기 위해 출근하는 직원들이 한 줄로 길게 서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등을 이유로 중앙 로비 출입문이 폐쇄돼 사원증을 확인하고 있다.주소현 기자/addressh@heraldcorp.com

하지만 사원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불편으로 다가오고 있다. 또 다른 LG 계열사 직원인 이모(42) 씨는 “경비 쪽에서 일일이 ID카드(사원증)를 체크하다 보니 평소보다 출퇴근 시간이 10분이나 더 걸린다”고 불편을 토로했다.

역시 LG 계열사 직원인 정모(35) 씨도 “내부에 정치적 구호가 달린 띠 같은 것(노조에서 ‘소원천’이라고 부르는 것)을 달아 놓았는데, 솔직히 미관상 보기 안 좋은 것은 사실”이라며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상황이긴 하지만 외부에서 손님이 가끔 오시는데 출입도 불편할 뿐더러 이런 것들이 보여지니 솔직히 신경이 좀 쓰인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노조와 사측 사이에서 크고 작은 실랑이도 이어지고 있다. 노조 측은 텐트를 설치하던 지난 22일 저녁에 사측에서 텐트 바닥이 젖도록 화단에 물을 뿌리고 바리케이드 안에 물을 채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측 관계자는 “사유지에 텐트를 설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 치는 과정에서 바리케이드를 무겁게 하려 안에 넣어둔 물이 샌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10일에는 중앙 로비에 노조 측에서 소원천을 게시하고 사측에서 이를 막는 과정에서 청소노동자 한 명이 넘어져 갈비뼈가 골절되는 등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이이 대해 노조 측은 폭행을 주장하는 반면 사측에서는 실랑이라고 맞서고 있다. 노조 측이 충돌이 있었던 경비용역업체 직원을 특수상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자 사측에서도 무고와 명예훼손 등 혐의로 맞고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업체에서 고용을 승계해 이들의 LG트윈타워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다. 2012년부터 근무해왔다는 청소노동자 김모(63) 씨는 지난해까지 줄곧 지수아이앤씨 소속으로 LG트윈타워를 청소했다. 그는 “지인들은 대기업에서 일해서 좋겠다고 했지만 일이 수월하거나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냥 일하던 데에서 계속 하고 싶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으니까”라며 “힘들지만 깨끗하게 청소해 놓으면 기분이 상쾌하지 않냐”라고 덧붙였다.

물론 노조를 응원하는 이들도 있다. 출퇴근길에 만나는 직원들 중 이따금 얼굴을 찌뿌리지도 않고 때때로 힘내라는 말을 들으면 힘을 얻는다는 게 청소노동자들의 설명이다. 김씨는 “남편은 건강을 이유로 만류하지만 딸은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라고 응원해 준다”며 웃었다.

하지만 노조와 사측의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사측은 지난달 농성을 하고 있는 청소노동자 26명에게 LG마포빌딩에서 근무할 것을 제안했으나 노조 측에서 거절했다. 이들은 “마포에서 일하고 있는 19명은 우리가 가면 어디로 가느냐”며 “우리처럼 해고될 텐데 똑같이 반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측에서는 이 이상의 대안을 내놓기 어렵다고 전했다. LG마포빌딩은 청소노동자들을 고용했던 지수아이앤씨에서 미화를 맡고 S&I에서 시설 관리를 맡아 그곳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을 전환 배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S&I 관계자는 “저희 입장에서는 전향적인 안을 던지면서 양측 간 의견을 좁히기 위한 방법 등을 강구하고 있다”며 “새로 일하게 된 청소노동자들도 농성이 지속되면서 불안해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이날 오전 LG트윈타워노조는 LG트윈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역회사의 일방적 계약 해지 이후 노동자 80명이 쫓겨났다”며 “고용 승계를 염원하는 마음을 모아 100개의 텐트를 설치해 투쟁을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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