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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0년 뒤를 어찌알까”…투기가 된 ‘사전청약’ [부동산360]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청약은 ‘선물’ 거래와 비슷하다. 미래 약속한 날에 특정한 가격에 사기로 계약하는 게 선물이기 때문이다. 청약은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주택을 견본주택만 보고 특정한 가격(분양가)에 사기로 미리 계약을 하는 행위다. 2~3년 후 입주 때, 주변 집값이 많이 올라가면 잘 한 선물 투자다. 분양가에 비해 집값이 많이 올라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사전청약에 들어가는 경기도 하남시 교산지구 일대 모습. [연합]

반대로 집값이 하락하면 낭패다. 어쨌든 처음 약속한 분양가로 잔금까지 내고 계약을 마무리해야 한다. 분양가보다 집값이 떨어졌기 때문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덕이지구 아파트 단지들의 상황이 그랬다. 2008년에 분양하고, 2011년 입주했는데 주택시장 침체로 집값이 분양가보다 싸졌다. 입주 후 10년이 지나고, 최근 겨우 분양가 수준의 실거래 계약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전해진다. 투자 개념으로 따지면 12년 간 분양가보다 싸진 아파트에 물려 다른 투자 기회를 놓치면서 손해를 봤다.

선물 거래는 사실 미래의 시세 변동에 대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미래에 물건 값이 많이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면 선물 계약을 해두면 안정적으로 물건을 구할 수 있다. 집값이 오르는 시기 분양시장이 활기를 띠는 것도 같은 원리다. 상승하는 집값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분양가로 안정적으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으니 사람들이 몰린다.

선물 거래는 주로 1년 미만의 짧은 기간을 잡고 이뤄진다. 1년 이내 일어날 일을 대비해 미리 계약한다는 이야기다. 기간이 짧은 만큼 어느 정도 구체적인 분석과 전망을 통한 투자가 가능하다. 이와 달리 청약은 2~3년 후 집값을 예상하고 진행된다. 계약과 입주 사이 기간이 길면 그만큼 ‘리스크’는 커진다.

청약과 입주 사이 변화가 컸던 시기가 2007년부터 2010년 전후 기간이다. ‘글로벌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분양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사람들은 집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시세보다 10~20% 높은 가격에 청약했다. 그런데 이들 아파트가 입주할 때인 2010년 이후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당시 부동산시장의 최대 이슈는 준공됐는데도 입주하지 않는 불 꺼진 아파트, 즉 ‘미입주’였다. 분양권은 거래되지 않았고, 잔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미입주는 준공을 했는데도 잔금을 받지 못한 건설사들에 큰 짐이 됐다. 파산하는 기업도 줄줄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오는 7월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거듭 강조하는 3기 신도시 ‘사전예약’은 계약과 입주 시점 사이 간격이 얼마나 길지 예상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큰 투자다.

변수도 무수하게 많다. 당장 업무 주체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압수수색 등으로 담당 부서들이 정상적인 업무를 하지 못하고 있고, ‘환골탈태’ 수준의 조직 개편까지 예고된 상태다. 사전청약 업무가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해도, ‘본계약’까진 수많은 장애물이 있다. 보상비와 보상방법에 불만이 큰 토지주들의 반발로 토지보상은 얼마나 늦어질지 알 수 없다. 입주 때까지 빨라야 5~6년, 길면 10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사전예약’으로 보금자리 주택을 공급한 적이 있는데, 토지보상이 지연되면서 ‘본청약’까지 5년 이상 걸렸고, 하남 감일지구의 경우 사전청약부터 입주까지 10년이나 걸린 적도 있다.

말하자면 5년 후, 10년 후 주택시장 변화까지 예측하고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주택시장 사이클 상 향후 2~3년 이후부턴 하락기가 시작된다고 보는 전문가도 많아, 지금 분양가가 싼 게 싼게 아닐 수 있다.

투자와 투기를 가르는 요소 중 하나는 위험 요소를 제대로 예측하고, 평가해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여부다.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고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기 힘든데 현재 집값 불안 만을 고려해 무작정 청약에 나서는 건 투자보단 투기에 가깝다. 3기신도시 사전청약은 점점 더 투기처럼 변하고 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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