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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초에 18번 발동작…플라멩코는 삶을 보여주는 춤”…'베르나르다 알바' 이혜정 안무가
10명뿐인 프로, 플라멩코 2.5세대
뮤지컬, 오페라 안무가ㆍ 영화배우
산업공학 전공한 ‘공대생’에서 무대 섭렵
 
‘베르나르다 알바’, “두 천재의 ‘다빈치 코드’를 푼 기분”
“변박과 격정적 감정…플라멩코는 내 삶을 보여주는 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안무를 맡은 이혜정 감독은 국내 플라멩코 2.5세대다. 10명 밖에 되지 않는 프로의 세계에서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작품의 안무를 맡고 영화배우로 스크린에도 서는 멀티테이너다. 그는 “플라멩코는 날 것의 감정을 드러내고, 그 안에 미친 듯한 리듬감을 실어야 하는 춤”이라고 했다. 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딱 다가다가다가다가다가” 속사포 래퍼 아웃사이더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혀끝마저 무뎌지는 리듬을 발로 두드린다. “일 초에 최소 12번에서 18번 정도.” 화려한 의상 아래 숨은 발은 정신없이 스텝을 밟고, 손은 박자와 박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배우들은 쉬는 시간에도 한 데 모여 박수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선 플라멩코가 숨은 주역이다. 무대 위엔 넉 달의 연습기간 동안 ‘피 땀 눈물’을 흘린 배우들이 조명을 받았고, 그 뒤엔 이들을 이끈 이혜정 안무감독이 있었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이 감독의 연습실(아르떼플라멩코)를 찾았다. 작은 스페인을 옮겨놓은 이곳에서 뮤지컬 ‘조로’·‘베르나르다 알바’, 오페라 ‘카르멘’의 안무가 태어났다.

플라멩코는 ‘리듬의 마법’이고, ‘감정의 분출’이다. 끊임없이 심장을 두드리는 박자, 그 위를 타고 흐르는 격정적 선율, 맹렬하게 쏘아붙이는 리듬 위에 실은 정교한 움직임…. ‘베르나르다 알바’의 프롤로그는 플라멩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날 것의 감정을 드러내고, 그 안에 미친 듯한 리듬감을 실어야 해요. 관객이 느끼기에 삶이 잘 보이면 잘 춘 춤이에요.”

‘베르나르다 알바’와 처음 만난 것은 2018년이다. 3년 만에 무대에 다시 올리며, 그의 고심도 깊었다. “설명하기 힘든 중간 매개체로의 역할”인 플라멩코를 살리기 위한 고민이었다. 작품은 20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원작으로 했다. 국내 관객에겐 뮤지컬 ‘씨 왓 아이 워너 씨(See What I Wanna See)’로 잘 알려진 마이클 존 라키우사의 손을 거쳐 스무 곡의 넘버를 담은 뮤지컬로 다시 태어났다.

초연에 이어 다시 무대에 오르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안무를 맡으며 이 안무가는 “천재 작가의 의도를 연구하고, 분석하고, 파악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 그는 “두 천재와 싸우며 ‘다빈치 코드’를 푸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박해묵 기자

이번엔 오롯이 “천재 작가의 의도를 연구하고, 분석하고, 파악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안무를 구성했다. “로르카의 시와 플라멩코는 스페인에 깊이 베인 정서이자 현상이에요. 그들이 느끼는 것을 얼마만큼 공유하고, 가감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왜곡되지 않게 표현하고 절충하는 저만의 고민이 있었어요.” 3~4개월의 준비기간 동안 이 안무가는 “두 천재와 싸우고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상징과 은유가 많은 로르카의 원작을 탐독하다 보니, “그의 시는 곧 플라멩코”였고, 라키우사의 음악은 플라멩코와 다양한 스페인 민속춤(볼레로, 호따)의 압축이었다. “다빈치 코드를 푸는 기분이었죠.”

작품의 의미를 풀어헤치고 보니 저마다의 캐릭터가 가지는 감정을 플라멩코로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플라멩코는 20분 정도 길이의 곡 안에 기승전결을 넣어요. 15분 동안 쌓아오다, 마지막 5분에 살풀이하는 것이 플라멩코라면, 뮤지컬은 길어야 3분이니 살풀이 한 동작만 하는 거예요.” 이 작품의 안무는 다시 공부하고, 비워내고, 버리는 작업이었다. 로르카의 원작에 집중해 구성한 안무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정서를 함축한다. “인간의 폭력성과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데에 은유와 노골적인 표현을 오간 로르카처럼 저 역시 은유와 직설을 오가며 짜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플라멩코 ‘초짜’인 배우들은 애를 먹었다. “무엇 하나도 절충해주지 않았어요. 로르카의 작품 위에 눈속임을 할 수 없었거든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춤으로 꼽히는 플라멩코는 무대 위로 옮겨졌다. 프롤로그의 압도적 장면은 “프로도 해내기 힘든 박자”에 안무와 연기를 겸해야 했다. “자존감이 떨어진다”며, “조금만 쉽게 할 수 없냐”는 하소연도 나왔다. “재능있는 배우들이 해내야 한다는 절박함과 집중력으로 만들어낸 거예요.” 변박의 안무가 주는 압박과 완벽한 연기는 플라멩코가 낯선 배우들에게 고스란히 공포로 돌아왔다. 연습실은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30초의 안무 동안 손의 위치, 시선의 높이, 다리의 각도 등 스무 개의 약속을 모두 이행한다. 덕분에 분위기는 좋았다. “불화나 사사로운 감정싸움이 생길 새도 없었죠. 익숙해질 수 없는 레벨의 춤을 연습해야 했으니까요.(웃음)”

플라멩코를 출 때 이혜정 안무가는 전혀 다른 눈빛으로 무대에 선다. 그에게 플라멩코는 “정복할 수 없는 산”과 같다. 박해묵 기자

플라멩코를 처음 만나던 때, 이 안무가도 같은 경험을 했다. 그는 국내 플라멩코 불모지에 뿌리내린 2.5세대쯤 된다. 지금도 국내에는 플라멩코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1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실력의 한계에 부딪히기 쉬운 장르다.

딸부잣집 막내는 ‘소심한 댄서’였다. “춤을 추는 건 아무도 없을 때였어요. ‘둘리스의 3번 트랙이 춤추기에 좋네.’ 음악을 틀고 혼자 추다 누가 오면 얼른 끄고 안 추는 척을 했죠.” 그때가 고작 다섯 살. 어쩐지 재능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난 춤을 잘 추는 것 같은데…” 차마 말로는 못했다고 한다. ‘예술가가 되겠다’고 강단을 부리는 타입도 아니었다. 재능을 발견해준 스승도 있었지만, 대학에선 산업공학을 전공한 공대생이었다. 그러다 20대의 막바지 스페인으로 떠났다. “내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 쓸 수 있는 것이 막연히 플라멩코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스페인에 머물며 배운 플라멩코 수업에서 그는 “존재감 제로”의 학생이었다. “집시 선생님들은 자기 리듬을 방해하는 것을 참지 못해요. 제가 틀린 발을 하면 핑거스냅(Finger Snap)을 내요.” 내내 살얼음 판이었다. 하루 다섯 시간의 수업 동안 제대로 발소리를 내본 적도 없다. “그땐 저도 이만큼의 리듬감이 필요한지는 몰랐어요.” 매일 7시간씩, 일 년간 춤을 추니 석 달 뒤 선생님 옆에 설 수 있는 실력이 됐다. 그 뒤로 한국과 스페인을 오가며 공부하고, 프로 안무가로서 발을 디뎠다.

소심한 꼬마가 유일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은 그를 또 다른 길로 이끌었다. “플라멩코는 즐거운 춤을 추기는 힘든 깊은 감성과 닿아있어요. 바위 틈 사이에 쌓은 내 눈물이 하늘 위로 솟아 닿을 거 같다고 하죠.” 저마다의 절망과 고독,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의 깊이를 꺼내는 이 춤은 “아무리 해도 정복이 안 된다”고 한다. 그에겐 플라멩코와 ‘베르나르다 알바’가 같은 무게의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어려운 친구예요. 이제서야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속단할 수 없어 나를 계속 겸손하게 만드는 작품이죠. 폭력의 시대에 놓인 개인의 위선, 누군가의 피해의식, 그로 인한 불편감이 공존하는 작품이에요. 그 여지를 안고 대하면 달리 보일 거예요.” ‘부캐’가 많은 이혜정의 삶은 ‘베르나르다 알바’ 너머에서도 이어진다. 지난 한 해 코로나19로 취소된 개인 공연들이 예정돼있고, 배우로서 스크린(‘사랑의 고고학’)에도 선다. 멀티테이너 같은 활약상이다. 오는 6월부터 촬영에 돌입한다. “이렇게 유명하지 않으면서 멀티테이너가 되기 쉽지 않은데…” 무대 위 카리스마는 내려놓고 호탕하게 웃는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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