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검찰에 배신당했다”…정경심, 증거인멸 전말은 [좌영길의 법조 레프트 훅]
“매우 중요한 자료다, 외부에 유출하면 안 된다”
조국 전 장관 “집사람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실행한 김경록은 처벌…정경심은 증거인멸 무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지난해 12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지시를 받고 검찰 압수수색 직전 학교 컴퓨터를 반출하는 등 증거를 은닉한 혐의로 기소된 자산관리인이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정 교수의 1심 판결문을 보면, 정 교수는 물론 조국 전 법무부장관까지 압수수색에 대비한 정황이 상세히 드러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부장 김예영)는 5일 증거은닉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장관 자산관리인 김경록 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자택 불러내 “압수수색 대비해야 한다”… 컴퓨터 저장매체 교체 지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연합]

투자증권사에서 일명 ‘프라이빗 뱅커(PB)’로 일해오던 김씨는 2014년부터 정경심 교수의 주식과 금융상품을 개별 관리했다. 정 교수는 2019년 8월 28일 오후 6시께 김 씨를 서울 방배동 자택으로 불렀다. 김씨를 서재로 데리고 간 정 교수는 컴퓨터 두 대를 보여줬다.

“검찰에 배신당했다. 압수수색에 대비해야 한다.”

정 교수는 이 말을 남긴 뒤 하드디스크 교체를 지시했고, 김씨는 한시간 뒤 서초동 전자상가를 들러 교체할 하드디스크와 SSD메모리를 구입했다. 김씨가 SSD를 새것으로 교체하자 정 교수는 “매우 중요한 자료들이어서 외부에 유출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김씨는 컴퓨터 SSD를 교체하던 중 현관으로 들어오던 조국 전 장관을 마주치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은 김씨에게 “집사람 도와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악수를 한 뒤 침실로 들어갔다. 저장매체를 교체한 컴퓨터 두 대 중 하나는 조 전 장관이 사용하던 것이었다.

김경록 PB 검찰 진술과 법정 증언

““정 교수 자택 서재에서 흰색 PC에 장착된 하드디스크를 분리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정 교수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했다. 정 교수는 ‘컴퓨터를 분리하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마치 하드디스크 교체작업을 중계하는 듯 전화통화를 했다.”

“통화 상대방도 하드디스크 교체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던 분위기였고, 정 교수와 하드디스크 교체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전화통화 상대방이 조국 전 장관이라고 결론냈다. 이 시간대에 정 교수가 통화한 사람은 세 명이었는데, 동양대 부총장과 변호인인 이인걸 변호사, 남편인 조국 전 장관이었다. 동양대 부총장과는 집안 하드디스크 교체를 논의할 이유가 없고, 이인걸 변호사는 나중에 하드디스크 반출 사실을 알고 정 교수에게 “그렇게 떳떳하시면 왜 자택 PC를 교체하시느냐”고 질책한 사람이었다.

정 교수는 추후 법정에서 “자료를 자택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펴보기 위해 저장매체를 김경록에게 건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압수수색에 대비해 증거를 은닉한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기자들이 정 교수 자택 입구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서재 안에서 PC에 저장된 자료를 살펴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누가 나 보진 않았겠지?”…‘고객 호출’에 경북 영주까지 내려간 자산관리인
동양대 정경심 연구실 [연합]

3일 뒤 김씨는 또다시 정 교수의 호출을 받았다. “오늘 동양대에 내려가야 하는데, 함께 내려갈 수 있느냐”는 연락이었다. 동양대는 경북 영주에 소재한 학교다. 김씨는 당일 선약이 있었지만, 거절하지 못하고 저녁 8시께 정 교수의 집을 찾았다. 정 교수가 미리 챙기라고 한 하드디스크도 가져갔다.

밤늦게 경북 영주로 향하면서 김씨는 운전을 했고, 정 교수는 수차례 조국 전 장관과 통화했다.

“김 대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영주에 가고 있다. 영주에서 하룻밤 자고 부산으로 갈 것이다.”

통화내용을 들은 김씨의 검찰 진술이다.

“당시 옆에서 듣기로는 통화내용 자체가 정 교수가 동양대에 내려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조국 교수님이 이미 아는 것 같고, 누구와 어떻게 내려가는지에 대해서만 추가로 궁금해 하는 뉘앙스였다.”

자정이 거의 다 된 시간에 동양대에 도착한 김씨는 정 교수 사무실로 향했다. 김씨는 미리 준비한 하드디스크를 가지고 사무실로 들어갔지만, 정 교수는 PC를 켜고 자료를 살펴보다가 “PC 본체를 통째로 용산전자상가에 가지고 가서 저장매체를 SSD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정 교수는 이 과정에서 김씨에게 “누가 나 보진 않았겠지?”라며 노출을 꺼리는 듯한 말도 건넸다.

결국 김씨는 정 교수가 시키는 대로 PC 본체를 승용차에 싣고 서울로 돌아왔다. 김씨는 검찰 압수수색이 끝난 뒤인 2019년 9월 3일 정 교수로부터 ‘PC를 가져오라’’는 연락을 받고 서울 잠원동에서 만나 PC본체를 건네줬다. 정 교수가 자택에서 빼낸 저장매체 3개는 김씨가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검찰에 임의제출했다.

시킨 일 한 ‘乙’은 징역형… ‘甲’ 정경심은 무죄
[연합]

김씨는 결국 1,2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는 정경심 교수의 사모펀드 투자와 관련해 도움을 주고 있었고, 정 교수로부터 압수수색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해서 컴퓨터가 중요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김씨는 사건 실체 발견을 곤란하게 해 사법을 저해했다”면서도 “주요 고객인 정 교수의 자산관리인으로, 여러 해 인연을 맺어 사회적 지위를 따졌을 때 열세에도 있어 정 교수의 요청에 의해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를 끌어들인 정 교수는 1심에서 증거인멸 혐의 무죄를 받았다. 검찰은 정 교수가 증거인멸을 지시한 교사범이라고 주장했다. 형법상 범행 당사자가 직접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 다만 타인을 시켜 증거를 인멸하도록 한 교사행위는 처벌대상이다. 재판부는 정 교수가 단순 지시자가 아니라, 함께 범행을 실행한 공범이라고 봤다. 정 교수가 직접 김씨와 함께 경북 영주까지 내려갔고, 자신의 출입증으로 문을 열고 PC 저장매체를 교체하려던 김씨에게 본체를 반출하도록 한 점을 고려하면 정씨는 ‘지시자’가 아닌 ‘공동실행범’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jyg97@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