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IT과학칼럼] 바다서 느낀 세월의 변화

얼마 전 선상에서 모처럼 짭조름한 바닷바람을 맞을 기회가 있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보유한 연구선 ‘이사부’호가 새로운 탐사장비 시험을 위해 동해로 나갈 때 동승한 것. 2016년 3월 온누리호를 타고 심해무인잠수정 ‘해미래’를 이용해 마리아나해저를 탐사한 이후 실로 5년 만의 항해였다. 연구원 시절에는 거의 해마다 한 달가량 ‘온누리’호를 타고 태평양 망망대해를 누비곤 했는데….

비록 이틀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항해가 사뭇 기대됐다. 이사부호는 연구자들이 탐사 나갈 때 가장 선호하는 연구선이지만 2016년 11월 취항 후 아직 승선해보지 못했기에 더욱 그랬다. 이 배는 8층 높이에 길이 약 100m, 무게 약 6000t이 나간다. 바다를 조사하는 40여 종의 최첨단 장비가 실려 있다. 해양과학자들에게 연구선은 ‘떠서 움직이는 실험실’이다. 첨단 연구선에 승선해서 젊은 직원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오래 전 학창시절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힘들게 해양 탐사하던 때가 떠올랐다. 예전에는 조그만 어선을 빌려 뱃멀미에 시달리면서 바닷물 온도를 재고, 염분 측정할 물을 유리병에 담아 실험실로 가져왔다. 운반도 힘들었지만, 염분을 재는 과정은 ‘세월아 네월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수층 깊이에 따라 바닷물을 채수하려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플랑크톤을 채집하기 위해 손으로 네트를 끌고, 바닥에 사는 생물과 퇴적물을 채집하려고 쇠로 된 무거운 장비를 바닥까지 내렸다 올려야 했다. 전동윈치가 없으면 손으로 직접 핸들을 돌려 끌어올려야 하는 중노동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염분, 수온, 수심을 잴 수 있는 시티디(CTD)가 달려 있고, 바닷물 채수기가 원통형 틀에 부착된 장비를 이용한다. 이를 케이블에 매달아 바다 깊이 내렸다 올리면서 손가락으로 컴퓨터 키보드만 누르면 원하는 수심에서 바닷물을 채수할 수 있다. 또한 그곳의 수온, 염분, 수심을 알 수 있다. 모든 과정은 모니터로 확인된다. 자료는 자동으로 그래프로 그려져서 수심에 따라 수온과 염분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있다. 그뿐이랴. 인공위성을 이용해 광역 바다 상태를 한눈에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연구선으로 몇 달 이상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 순식간에 해결된다.

학창시절 ‘해양과학자는 90% 체력과 10% 머리가 필요하다’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곤 했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현장 탐사가 불가능했다. 요즘은 정말 편하게 머리와 손끝만으로도 탐사가 가능하다.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를 더 이야기했다가는 꼰대 소리 들을까 봐 그만하는 게 좋겠다.

연구선은 한 번 출항하면 돌아올 때까지 24시간 계속 탐사를 한다. 역설적이게 연구선과 장비가 첨단화되면서 탐사시간은 오히려 늘어났다. 얻어지는 엄청난 양의 자료는 컴퓨터가 처리해준다. 탐사작업은 편해졌지만 장기간 짬짬이 눈을 붙여가면서 온종일 탐사를 해야 하니 몸이 고달프기는 매한가지다. 비록 몸은 고되지만 아름다운 바다 경치가 정신건강에 보약 노릇을 한다. 수평선을 밟고 있는 하늘은 구름 모양에 따라 매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일출이나 일몰 때 붉게 변하는 바닷물 색깔은 환상적이다. 스트레스가 풀리고 정신은 맑아진다.

이사부호에 승선해 40년 전 탐사 여건과 비교해보니 해양과학기술이 정말 괄목할 만큼 성장했음을 느꼈다. 우리 사회 어느 한구석 과학기술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지만 멀리 떨어진 바다에도 과학은 스며 있다.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원장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