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 판단” vs “촛불민심 거스르는 것”…당내 찬반
野서는 일단 환영…정치적 셈법엔 속내 복잡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일 신축년 새해 첫날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묘수일까, 악수일까.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론’을 제기하며 새해초 정국을 흔들고 있다. 새해 첫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히면서 여당 내에선 찬반이 갈리고 있다. 야당에선 환영의 분위기가 역력하지만, ‘정치적 셈법’을 놓고는 복잡한 속내가 읽혀진다.
3일 정치권에선 이낙연 대표의 사면론을 차기 대권 주자로서 정치적 ‘승부수’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몇 개월째 지지율이 답보상태인데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윤석열 검찰총장에도 밀리는 사례가 나오면서 ‘대세론’이 점점 힘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을 반전시키고 지지율을 반등시킬 ‘한방’이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사면론을 통해 보수·중도층의 지지를 회복하고 ‘국민통합’의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 이 대표의 의중이 아니겠느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자칫 민주당의 전통 지지층의 신뢰를 잃는 ‘역풍’의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재확산 속에서 방역·백신 불안에 시달리고 부동산·민생 경제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주장이 민심에 어느 정도나 영향을 주겠느냐는 것이다.
당장 여당 내에서조차 의견이 갈린다. 김대중(DJ) 정부에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지낸 김한정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당연히 논란과 반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한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자신에게 내란음모 굴레를 씌워 사형에 처하려 한 전두환 전 대통령 사면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요청했다”며 ‘통합은 정치의 의무’라고 했다.
반면 정청래 의원은 “용서와 관용은 가해자의 몫도 정부의 몫도 아니다. 오로지 피해자와 국민의 몫”이라며 “탄핵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이 용서할 마음도 용서할 준비도 되어있지 않고 그럴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박주민 의원도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납득하기 어렵다”고 했고, 김남국 의원도 “촛불 민심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했다. 김종민 의원도 “사면은 국민적 동의가 있어야 할 굿 있다”며 회의적인 뜻을 나타냈다.
이처럼 당내 반발 여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사면론’이 자칫 당내 분열을 초래하거나 아예 실현이 무산될 경우에는 이 대표의 대권가도에는 큰 타격이 될 수 밖에 없다.
야당에선 즉각 환영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가운데, “선수를 놓쳤다”는 아쉬움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김종인 대표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과”를 하고서도 오히려 사면 주장엔 소극적이다가 결국 여당에 한발 늦은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사면론을 반기는 메시지는 이 대표의 발언 직후 여기저기서 나왔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페이스북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국정 운영에서 벗어나 새해부터는 통합에 힘을 싣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며 “환영한다”고 했다. 원 지사는 “여권의 지지율 하락 속도를 늦추기 위한 여론 떠보기라면 후폭풍이 거셀 것”이라며 “구체적 논의도 늦지 않게 진행하는 것이 낫다”라고 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박형준 전 의원도 “의도가 무엇이든 이 대표의 사면 제의를 환영한다”며 “국민 통합을 위해서나 국격을 위해서나 사면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께서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역시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이언주 전 의원도 “전적으로 환영하며, 어떠한 정치 공학적 계산 없이 신속하게 사면을 단행할 것을 문 대통령에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재오 상임고문도 언론을 통해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여당 대표가 흉흉한 민심을 제대로 읽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으나 페이스북에선 “야당 대표라는 분은 어디서 뭘 하시는지ㅡ사과할 때는 빠른데”라며 김 대표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osy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