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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안들리는’ 디지털금융 협의회…금융위는 왜?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선긋기는 중요하다. 아프리카 북부 지역엔 국경선이 직선인 국가들(리비아·알제리·말리·수단)이 많은데, 이들 국가들엔 어김없이 분쟁과 분란이 많다. 소위 서구열강들이 그어놓은 해당 국경선엔 산과 강 자연지형물과 인종과 민족에 대한 배려가 빠져있다. 한번 그어진 선은 선 자체의 ‘관성’에 의해 오랜 시간 유지되기 일쑤다. 그래서 처음 그을 때 잘 그어야 한다.

금융권에선 기존 금융사들과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 업체들 사이의 선긋기 작업 ‘디지털금융 협의회(협의회)’가 화상 회의 형태로 진행중이다. 핵심은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금융산업인 빅테크 업체들과 기존 금융사들 사이의 경계를 어떻게 구획하느냐다. 각 기업마다 매출 규모도 영업이익, 직원수, 비즈니스 모델 등이 모두 다르다. 결론 도출도 쉽지 않다. 7차 회의 가운데 절반인 4차 회의가 이뤄졌는데, 문제는 또다른 차원에서 불거졌다. 바로 화상 회의 시스템 자체다.

협의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회사 직원들이 참관키 위해 뒷자리에 배석해 듣고 있었는데, 전혀 들리지가 않았다. 무슨말을 하는지 들려야 반박도 하고 토론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화면 꺼지기는 일쑤고 재생 지연 현상도 적지 않았다. 또다른 협의회 참가자는 “회의를 이렇게 진행하려고 협의회를 만들었냐. 이정도로 토의해서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다들 승복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참석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들리지가 않으니 집중이 어렵고 집중이 어려우니 토론은 더더욱 힘들며, 다들 본인들이 준비한 3~4분 가량의 할 말만 하고 종료되는 형태로 회의가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주먹구구다.

시스템 제공업체가 어느 업체인지 확인했다. 국내 중소 벤처 업체인 ‘구루미 비즈’였다. 2015년에 설립된 회사로 직원 30여명 규모였다. 문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트래픽 량 폭증이었다. 올해 3분기 구루미의 화상회의 트래픽 량은 지난해 대비 400% 가량 늘었다. 회의실 개수는 지난해 2분기 5000여개에서 올해 2분기에는 11만여개로 폭증했다. 트래픽 폭증은 개별 서비스 만족도를 낮춘다. 음성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불안정한 시스템을 왜 향후 수십년 금융권 지형을 바꿀 디지털금융 협의회에 사용하는지가 궁금해졌다.

답은 간단했다. 문재인 정부가 밀어주는 곳이 ‘구루미 비즈’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3월 유니콘 기업 육성 차원서 D캠프를 방문했는데 그 자리에 구루미 대표도 참석했다. 구루미는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비대면 서비스 바우처 사업’ 공급업체로도 지정받았다. 문재인 정부가 나섰고 목소리큰 정치인 장관이 해당 업체를 밀어주자 한국 기업 육성 차원서 금융위도 동참에 나선 셈이다. 들리지도 않는 협의회가 4차례나 이뤄진 원인은 그랬다. 금융위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화상 회의가 불가피했다. 금융위도 여러 측면을 고려해 화상회의 시스템 사업자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게 회의입니까?” 지난 4차 협의회 때 한 참가자는 시스템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일차적인 문제는 시스템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대로 진행되면 모두를 납득시킬만한 결과 도출도 사실 어렵다. 참가자들은 “차라리 줌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신토불이(身土不二)’, ‘토종기업(土種企業)’ 이데올로기는 IMF 때 끝났다. 바꾸자. 세번이나 더 남은 협의회에서 논의해야 할 의제는 아직도 산더미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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