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연일 대북 유화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북한이 내년 1월 예정된 제8차 노동당 당대회를 앞두고 미국 대선 결과를 비롯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등 침묵모드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굵직굵직한 남북구상을 잇달아 밝히고 있다.
이 장관은 27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올해 작황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식량과 비료를 적지 않은 규모로 적정한 때 협력할 용의가 분명히 있다”며 “일방적으로 ‘몇만톤하겠다’ 할 일은 아니고 조금 주며 북쪽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어 감정적으로 멀어지게는 안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의 시선은 내년 봄을 향하고 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내년 봄쯤이면 백신이나 치료제를 통한 협력을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북쪽의 판단이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날에는 “필요하다면 내년 봄이라도 식량과 비료 등을 통해 적시에 남북이 협력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며 구체적인 시점까지 못 박아 대북 식량·비료 지원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정부 당국 차원의 대북 식량 지원은 2010년 40억원 상당의 국내산 쌀 5000t을 보낸 게 마지막이다. 대북 비료 지원은 2007년 961억원 규모의 30만t 이후 중단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작년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국내산 쌀 5만t 지원을 추진했지만 북한의 거부로 무산됐다. 이 장관이 ‘북한의 자존심’과 ‘적지 않은 규모’를 언급한 만큼 정부의 대북 식량·비료 지원 규모는 상당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의 대북 유화 손짓은 인도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 23일에는 북한이 폭파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다시 세워야한다며 서울·평양 대표부와 개성·신의주·나진선봉 연락소 및 무역대표부 설치 구상을 밝혔고, 같은 날 재계 인사들과 만나서는 남북경협이 예상보다 빠르게 시작될 수 있다며 기업에 남북경협 2.0 시대 채비를 당부했다.
이 장관의 대북 유화 메시지는 미 정권교체라는 정세 전환기에 직면해 지속 제기되는 북한의 고강도 도발 가능성을 사전에 관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아울러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초대의장을 비롯한 재야시절 체득한 분단과 통일 등 민족문제에 대한 소신과 함께 4선 중량급 정치인으로서의 승부수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이 장관은 총선을 승리로 이끈 4선 원내대표 출신인데 내년 대선국면이 본격화되면 당내에서 새로운 역할 요구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통일부 장관으로서 내년 상반기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자칫 장관 경력이 오히려 정치적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