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헤럴드포럼] 거대한 우주를 보이게 하라

우주는 너무나 방대해서 우리가 직접 보지 못하는 부분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우주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자 첨단기술을 계속 개발하고 활용해 나간다. 저 멀리 어두운 천체로부터 오는 극한의 밝기를 감지함과 동시에 방대한 우주 규모를 다루기 위해 현 기술력을 극복할 수 있는 관측 기술과 기기를 고안하고자 애쓴다. 한 나라의 천문연구 수준이 첨단 과학기술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으며, 천문학자는 첨단기술과 공생하고 있다.

천문연구는 우주를 관측하고 이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주로부터 수집한 정보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제시하고 이를 검증하는 이론 연구를 포함한다. 천문연구는 우주를 실험실로 활용할 수 없다. 천체를 대상으로 하는 실제적인 실험에 한계가 있으므로, 이론적 모형을 컴퓨터로 구현하는 수치모의실험(시뮬레이션)이 매우 유용한 가설 검증 방식이다. 보이지 않는 우주를 이론적으로 검증하고 가상으로 구현해 보는 것이다. 수치모의실험 연구는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현상의 인과관계를 추적할 수 있고, 현 기술력으로 관측할 수 없는 현상을 예측함으로써 관측 전략 수립에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수치모의실험은 개인용 컴퓨터로 하루 만에 끝나는 것부터 슈퍼컴퓨터를 수개월 이용해야 수행할 수 있는 것까지 규모와 특성이 천차만별이다. 그중 은하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진화하는지를 우주론적 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는 우주론적 유체역학 수치모의실험에는 정밀한 수치모형의 개발, 막대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 자원의 확보, 컴퓨팅 속도를 향상하고 대용량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최첨단 컴퓨팅 과학이 수반된다.

보이지 않는 우주를 검증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우주론적 유체역학 수치모의실험 프로젝트인 ‘호라이즌 런(Horizon Run) 5’가 최근 성공적인 성과를 발표했다. ‘호라이즌 런 5’는 한국천문연구원과 고등과학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세 기관의 연구자들이 함께한 프로젝트다. 연구팀은 2018년 KISTI 가 구축한 당시 세계 11위 슈퍼컴퓨터 누리온에서 계산 효율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유체역학 수치실험 코드 람세스에 병렬 연산 최적화를 적용했으며, 지난해 누리온의 30% 계산자원을 3개월 동안 이용해 이 연구를 수행했다. 이를 통해 ‘호라이즌 런 5’는 기존 실험보다 약 10배 큰 우주 공간을 보여주며,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의 은하단 형성과 은하의 진화를 증명하게 됐다. 특히 수억 광년 크기에 이르는 우주 거대구조의 성장과 크기가 1만 광년보다 작은 은하들의 생성을 동시에 계산한 최초의 우주론적 유체역학 수치모의실험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국내 기술력으로 얻게 된 이 데이터들은 천문학의 최대 난제인 ‘은하의 기원’을 밝히는 다양한 연구에 활용될 예정이다.

“우리는 우주에 대한 근원적 의문에 과학으로 답한다.” 가끔 이 모토를 보면, 우주로부터 수집한 진리의 단편들을 인류가 축적해온 지식체계로 맞춰나가고 있음에 감동을 느낀다. 과학자들이 협력해서 인류의 정수인 최첨단 기술로 보이지 않는 우주를 한 꺼풀씩 밝혀내는 과정은 그 얼마나 벅찬 일인지 모른다.

신지혜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