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한국 대통령의 끝은 왜 불행할까?
한국식 '대권현상'이 불행의 근원
제왕적 위상, 기대…승자독식불러

변혁은 반대파 적대시, ‘내로남불’ 낳아
'혁명'보다 '이행하는 개혁'에 힘써야

역대 대통령 ‘외교함정’에 동력 상실
외교의 정치화 문제…초당주의가 답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희생·소통해야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정치제도가 대통령의 개인 리더십 스타일에 따라 정치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겉으로 드러난 민주 사회의 모습과는 달리 우리의 대통령제 통치 구조는 일방적 하향식 형태인 중앙 집권적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에서)

미 대통령 민주당 후보인 바이든은 “대통령이 된 후 트럼프 대통령이 기소돼 법정에 서는 것을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란 질문을 받고, 전직 대통령을 기소하는 것은 “매우 매우 특별한 일이며 민주주의에 그렇게 좋은 일도 아니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가 끝나면 범죄자가 되거나 끝이 불행한 것과 대조적이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우뚝선 대한민국, 그 성공신화를 이끈 대통령들의 ‘복수극’처럼 이어지는 비극은 왜 일어나는 걸까?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 주일대사를 거친 라종일 한양대 석좌교수를 비롯, 정치, 외교, 리더십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짚었다.

라종일 교수는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파람북)이 비극의 원인을 한국식 민주 정치의 구조적 특성인 ‘대권현상’에서 찾는다. 대통령직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 있다는 것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제왕적 위상을 갖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대권을 휘둘러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나, 대통령이 모든 걸 해결해주길 바라는 제왕적 기대감이 그것이다. 잠재의식 한편에 대통령을 왕조 시대의 군왕으로 여기고, 기대가 실망과 환멸로 바뀌면 극단적인 비판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한 대권주자의 성폭력 사건, 거액의 선거 자금과 후일에 난처한 일이 생기는 것도 대권을 둘러싼 부수적 현상으로 해석된다. 모든 인사와 정책이 행정부를 시녀삼은 청와대 중심으로 굴러가는 것도 이런 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라 교수는 “정해진 임기동안 한시적인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해야 하는 일은 과거의 업적을 이어받아 좋은 점을 더욱 발전시키고 다른 한편 잘못된 점을 시정하는 것이 원칙”이어야 한다며, “‘변혁과 혁명적인 전망’보다는 ‘이행하는 개혁적인 전망’”을 대통령의 역할로 꼽았다.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변혁과 혁명을 지향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대권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이는 자기에게 반대되는 사람들을 정책적 경쟁자로 여기기보다 적대적으로 보고 궤멸대상으로 보게 만든다. 역사책도 새로 쓰게 만드는 이런 일은 선과 ,악의 이분법, ‘내로남불’현상을 낳는다고 라 교수는 지적한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외교적 측면에서 한국 대통령의 불행을 살폈다. 미·중, 북한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외교는 종종 ‘외교 함정’이란 험난한 상황을 겪게 되고,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 국정 과제 추진 동력을 뺏는 원인이 된다. 외교가 대통령의 국정 추진에 치명적인 함정이 될 수 있는데도, 역대 대통령들은 이 함정을 피하지 못하고 동일한 좌절을 반복해왔다. 이는 선거과정에서 외교를 유권자도, 대통령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측면과 연결된다.

대통령의 외교공약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공약(空約)이 대부분인데, 특히 남북관계의 경우 정권이 바뀔 때마나다 ‘적’과 ‘형제’를 오가는 식이 돼왔다. 어떻게 하면 북한정권이 남한의 5년 단임 정권과 장기적인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게 조 원장의 지적이다.

조 원장은 역대 대통령들이 외교적 함정을 피하지 못한 공통된 문제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해결할 문제와 관리할 문제를 구분하지 않은 점을 든다. 역대 정부의 대북 정책 중 가장 잘 기획된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도 벽을 넘지 못했다. 특히 부시의 대북정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저자는 최근 외교의 정치화 현상을 우려한다. 이는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집권했을 때 외교의 정치화는 무조건 손해라는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선 통일을 추구하는 남한이라는 존재 자체가 위협이며, 진보 정권이라고 덜 위협적이지 않은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로, “외교에 관한 한, ‘초당주의’가 답”이라고 강조한다.

허태회 선문대 교수는 정치제도적 측면에서 대통령의 불행을 살피며, 제왕적 대통령제와 5년 단임제, 승자독식제도에서 구조적 원인을 찾는다. 대통령 1인에 대한 지나친 권력집중은 산업화 시기에는 민주주의를 희생시켰고, 민주화 이후에는 소통과 타협을 부정하는 권위주의의 모습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5년 단임제는 장기독재를 막는 데는 기여했지만 국정운영의 불안정과 비효율을 초래했고, 상대방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 설 자리가 없는 승자 독식 제도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역대 대통령들의 민주적 리더십 부재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청와대가 국민과 소통한다고 하지만 일방적이라며, 통고하는 행위를 국민과의 소통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짙다고 지적한다. 또한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려하고 정치 공학적 차원에서 국민이란 이름을 내세울 때가 적지 않다는 것.

저자들은 현대의 지도자란 자기 희생을 통해 국민의 신뢰와 존경심 속에서 국민적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겸허한 마음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후진적 정치 문화를 개선해 나갈 때 비로소 대통령의 불행을 멈출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라종일 외 지음/파람북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