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9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최근 미국을 방문해 남북관계는 미국 등 주변국들과 서로 의논해 풀어야 한다고 언급한 데 대해 거칠게 비난하면서 남북관계는 민족 내부문제라고 주장했다. 서 실장(오른쪽 세번째)이 국가정보원장을 맡고 있던 2018년 3월 대북특사단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기념촬영한 모습. [헤럴드DB]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북한이 관영매체를 통해 서훈 국가안보실장의 최근 미국 방문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조선중앙통신은 29일 ‘동서남북도 모르고 돌아치다가는 한치의 앞길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는 제목의 개인 명의 글에서 “남조선의 청와대 국가안보실 실장이란 자가 비밀리에 미국을 행각해 구접스럽게 놀아댔다”며 “최근 삐걱거리는 ‘한미동맹 불화설’로 심기가 불편해진 상전의 비위를 맞추느라 별의별 노죽(아양)을 다 부렸다”고 비난했다.

통신은 서 실장이 방미 기간 남북관계는 미국 등 주변국들과 서로 의논하고 협의해서 풀어야할 문제라고 언급한 데 대해 “얼빠진 나발”이라면서 “도대체 제 정신 있는 소리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반발했다. 특히 서 실장을 향해 “북남관계문제에 수십년 동안이나 몸 담아왔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북남 사이의 모든 문제를 푸는 근본열쇠가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데 있다는 것을 과연 모른단 말인가”라고 반문하면서 ‘미국산 삽살개’, ‘바보’ 등 거친 비난을 쏟아내기까지 했다. 다만 서 실장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다.

통신은 서 실장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한 뒤 “민족자주를 근본 핵으로 명시한 역사적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남조선 당국의 공공연한 부정이고 배신이며 노골적인 우롱”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북남관계는 말 그대로 북과 남 사이에 풀어야 할 우리 민족 내부문제”라며 “외세에 빌붙거나 다른 나라 그 누구와 논의하고 도움을 받아야 할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 “오늘 북남관계가 교착상태에 놓인 원인이 남조선 당국이 스스로 미국에 제발을 얽매여놓고 자기를 조종해달라고 제 운명의 고삐를 맡겨버린데 있다”면서 “북남관계를 망쳐놓고 있는 장본인에게 도와달라고 청탁하는 것은 집안 가산을 풍지박산낸 강도에게 수습해달라고 손을 내미는 격의 어리석은 처사”라고 조롱했다.

대남비방을 자제해오던 북한이 선전매체가 아닌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활용해 남측 정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국가정보원장에 이어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맡아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총괄해온 서 실장을 직접 겨냥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대남유화메시지를 보낸 뒤 남북화해와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또다시 방향 전환을 예고한 것인지 주목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미 대선 결과와 그 이후 한민관계, 한미 간 대북정책 공조 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서 실장이 미 대선 이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민족공조를 우선시하라는 메시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양 교수는 “이번 통신 보도가 비난전의 신호탄인지는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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