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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단지 그대가 부모란 이유로

어느 나라의 법률인지 맞혀 보시기 바란다. “국가는 개인소유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보장한다. 국민의 개인소유재산은 법에 따라 상속된다. 국민은 유언에 의하여서도 자기의 소유재산을 가정성원이나 그 밖의 국민 또는 기관, 기업, 단체에 넘겨줄 수 있다.” 잘 모르겠다면 원래의 조문대로 국민을 공민으로 바꾸어 보시라. 바로 북한 민법 제63조다.

상속제도는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는 자본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에는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옛 소련의 경우에도 1917년 공산혁명 직후 상속제도를 폐지했으나 불과 4년 만에 부활했다. 북한도 상속에 관한 규정이 민법 이외에 가족법과 상속법에 있다.

상속제도가 이어져 온 근거와 기능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피상속인의 의사, 가족이 협동해 축적한 공동 재산을 상속으로 승계하는 현실, 피상속인이 자신의 재산으로 유족의 부양과 생활을 보장한다거나 혈연의 대가로써 기능한다는 등 복합적인 측면이 있다.

우리 민법은 원칙적으로 피상속인과 일정한 혈연관계가 있으면 상속을 인정한다. 제한적으로 상속 결격 사유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선순위 상속인 등을 살해한 경우 등 몇 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비록 법적으로는 상속 결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지만 상속을 인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의문이 드는 경우가 최근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故) 구하라 씨의 경우를 비롯해 천안함이나 세월호 침몰 사고 등 재난재해 이후 양육에 전혀 기여하지 않은 친부모가 재산의 상속을 주장하면서 보상금·보험금을 달라고 신청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등 국민정서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가 있어 사회적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현행법상의 상속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고조되자 최근 국회에서 서영교 의원이 대표가 돼 민법상 상속 결격 사유에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으로서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사람’을 추가하는 개정안이 발의됐다. 단순히 혈연관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무조건 상속받는 것을 제한하자는 취지다.

과거 농경시대와 달리 가족이 공동으로 재산을 이루는 경우가 많지 않다. 또한 ‘핏줄’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상속받게 하는 것이 오히려 상속인의 의사에 반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상속권 박탈제도를 살펴보더라도 혈연관계 때문에 아무런 제한 없이 상속하는 것이 보편적 정의와 인륜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근거로 제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 대한변호사협회는 현행 민법상 상속 결격 사유에 피상속인의 비윤리적 행태를 추가하려는 개정안에 대해 반대했다. 판단 기준의 모호성과 그로 인한 분쟁 야기 위험, 거래안정성에 대한 침해 우려 등이 이유였다. 그러나 법률의 기능이 국민이 공감하는 그 시대의 사회 정의를 성문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유로 최근 서영교 의원의 대표발의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입장을 변경했다,

부모로서 부양 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했는데도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의 목숨값에 욕심내는 것은 법 이전에 정의에 반한다. 법은 시대의 정의에 따라 변화돼야 존중된다. 부모답지 않 은 부모가 내미는 부끄러운 손을 법의 이름으로 뿌리치는 정의가 조속히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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