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두 달 전 퇴임한 공정위 차관의 호소 "전속고발권 폐지 반대…고발 남발될 것"
8월 퇴임한 지철호 전 부위원장 '독점규제의 역사' 발간
10년 간 한국 공정위는 575건 고발…일본은 4건뿐
"기업과 정부는 적대자 아닌 친구돼야"
지철호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는 2018년 1월부터 올 8월까지 차관급인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행정고시 29회 출신으로 30년 이상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독점규제 업무를 하며 보냈다. 재직 중에는 '재계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명성을 떨쳤다. [연합]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불과 두 달 전까지 현 정부 경쟁당국 차관을 지냈던 지철호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정면으로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검찰에 담합 수사권을 준다면 기업은 물론 경제까지 망가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23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공정위가 조사를 제대로 못한다면 지적하고 견제하면 될 일이지 검찰에 수사 권한을 준다는 건 옳지 않다"며 "처벌에만 치중하다보면 기업은 물론 경제도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30여년 간의 공직 생활을 마친 지 전 부위원장은 최근 책 '독점규제의 역사'을 발간했다. 공정거래법의 역사는 기업 형사처벌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이러한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한국 공정위가 2010∼2019년 사이 총 575건(연평균 57.5건)을 고발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우리처럼 전속고발권을 두고 있는 일본은 같은 기간 고발이 4건(연평균 0.4건)에 불과한 것과 대비된다.

지 전 부위원장은 "일본은 입찰, 가격담합과 같은 악질적인 범죄나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았을 경우에 한해 고발 조치를 하고 있다"며 "수사기관이 무리하게 개입할 경우 자율과 창의를 저해해 경제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나라는 전속고발권을 두고 있지 않다. 형사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며 "미국도 최초 셔먼법에서만 형사 벌칙을 규정했고, 그 이후 만든 법에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 공정위의 고발 지침은 가벼운 입찰담합 사건도 형사고발하도록 하고 있다. 지 전 부위원장은 "우리나라 담합 사건의 70% 이상이 입찰담합"이라며 "심지어 하도급 대금이 밀려도 형사처벌을 받게 돼 애꿎은 기업만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중복·과잉수사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 전 부위원장은 "검찰과 공정위가 업무협약(MOU)을 통해 조사영역을 나눴다고 하지만 법에 명시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며 "시행령에라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정위와 검찰은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입찰담합과 공소시효 1년 미만 사건만 검찰이 수사하고, 나머지 경성 담합은 공정위가 조사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전속고발권은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수사가 가능하도록 한 제도다. 그는 전속고발권 도입 취지에 대해 "공정거래법이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집행돼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 규정"이라며 "특히 경제활동에 대한 법적용에서 경제부처의 전문적인 판단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발이 확산되면 사회 전반에 불신이 생길 수 있다고도 했다. 지 전 부위원장은 "기업끼리 같이 담합하자고 해놓고 경쟁 기업을 검찰에 고발해버리는 식의 중상모략이 나타날 수 있다"며 "사회 전반에 불신이 확산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금 공정거래법만 잘 운용해도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윌슨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 문구를 인용했다. "기업과 정부는 적대자가 아니라 친구가 돼야 한다"며 "기업을 무조건 형사처벌하려고 하다보면 서로가 적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을 혼내기보단 사전에 법을 잘 지킬 수 있게 유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kwater@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