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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블루’ 넘어 ‘코로나 레드’로…분노·스트레스 증가에 가정불화 급증
코로나19 장기화하면서 ‘우울’에서 ‘분노’로
‘분풀이’ 대상은 하루종일 붙어있는 가족…아동학대도 증가
이달 초 부산서는 딸이 “어머니 자가격리 위반했다” 신고도

[연합]

[헤럴드경제=윤호 기자] 이달 초 부산에서는 중학생 딸이 자가격리를 위반한 엄마를 경찰에 직접 신고한 사건이 발생했다. 모녀가 말다툼을 하다 엄마가 밖으로 나가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자가용에 잠시 머물렀는데, 딸이 아파트 문을 잠그고 112에 전화를 걸어 ”주민이 자가격리를 위반했다”고 신고한 것이다. 이웃에 의한 자가격리 신고는 있었지만, 가족이 가족을 신고한 사례는 처음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오랜 시간 자택에 머물러야 하는 가족 사이 불거진 갈등이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로 풀이된다.

코로나19 장기전에 따른 분노와 스트레스 증가로 ‘코로나 블루’(우울함)에 이어 ‘코로나 레드’(분노)가 신조어로 떠오르고 있다. 평범한 일상이 사라지고 직장과 학교, 취미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자 단기적인 우울감을 넘어 ‘분노’와 ‘공포’가 번지고 있는 것이다.

22일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코로나19 기획 연구단)이 진행한 ‘코로나19와 사회적 건강’ 설문에 따르면 지난달 ‘코로나19 뉴스와 정보에서 느낀 감정’을 조사한 결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지난 8월 말엔 같은달 초와 비교할 때 ‘분노’와 ‘공포’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1위 ‘불안’과 2위 ‘분노’의 감정 순위는 동일했지만 ‘불안’이라고 답한 비율은 15.2%포인트 줄어든 반면 ‘분노’는 11.5%에서 25.3%로 2.2배, ‘공포’는 5.4%에서 15.2%로 2.81배 높아진 것이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코로나19 기획 연구단)의 ‘코로나19와 사회적 건강’ 설문 결과. [유명순 교수 연구팀 제공]

문제는 이 같은 ‘분풀이’의 대상이 자가격리와 원격수업·재택근무, 그리고 실직에 따라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가족에게 향한다는 점이다. 코로나19 1차 유행 말기인 지난 4월에는 재택근무를 하던 30대 여성 회사원이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며 남동생에게 흉기를 휘두르다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실제 장예림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생활 방식이 변화하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늘어나면서 가정 내 불화가 심화하고, 이로 인한 의도적 사고 빈도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대 청소년층에서 평소보다 7~10배 급증, 거리두기 기간 청소년이 가정폭력이나 자해로부터 취약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최근 인천에서 라면을 끓여먹다 중화상을 입은 초등학생 형제와 지난 5월 경남 창녕의 상습 학대 아동은 모두 등교수업을 하지 못하고 원격수업을 받던 중 피해를 입었으며, 코로나19에 따라 관련기관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공통점이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혼율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 6월 이혼 건수는 8776건으로 전년(8680건)보다 1.1%(96건) 늘었다. 사실 코로나19 초기에는 ‘뜻하지 않게’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젊은 부부들을 중심으로 ‘코로나 베이비붐’이 기대되기도 했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경제적 갈등도 심해지면서 오히려 ‘코로나 이혼’(Covidivorce)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주부 이모(42) 씨는 “1학기에 이어 2학기에도 학교·학원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안됐지만, 초등학생 아이들을 하루종일 돌보는 내 처지에도 분노가 느껴져 스트레스가 많이 늘었다”며 “처음에는 회식이 줄어든 남편과 대화할 시간이 많아 좋았지만, 온가족이 집안에 붙어있으면서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향후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폭음, 도박 등 가족갈등을 더욱 부추길 수 있는, ‘오늘만 살자’는 식의 생활 태도가 늘어날 수 있어 우려된다”며 “‘이제는 장기전’이라는 점을 분명히 염두에 두고, 결국에는 (독감처럼 삶과 공존하더라도)사태가 완화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생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youkno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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