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칭기스 칸은 세계정복에 뜻이 없었다?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은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신대륙과 구대륙의 동식물, 병원균, 문화의 직간접적 교환으로 사회가 변화된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몽골제국 전문가인 티모시 메이 노스조지아주립대 교수는 이를 차용, ‘칭기스의 교환’이란 용어를 제시한다. 몽골의 정복과 제국은 기술과 사상, 문화, 종교,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분야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따지고보면 ‘콜럼버스의 교환’ 역시 ‘칭기스의 교환’의 결과다.

이를 제목으로 삼은 메이 교수의 ‘칭기스의 교환’(사계절)은 세계를 처음으로 네트워크화한 몽골제국의 영향력을 전면적으로 다룬다. 새로운 전쟁술을 비롯, 몽골의 행정, 종교, 흑사병, 팍스 몽골리카나 등 몽골 제국과 관련한 모든 주제를 망라했다.

저자는 “몽골인들은 군사분야의 혁신, 국제무역, 세계 종교의 확산, 기술과 사상의 전파를 몽골의 정복이라는 하나의 도가니 속에서 이룩해냈다”며, 세계는 이후 돌이킬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고 말한다. 특히 많은 여행자, 상인, 선교사 등이 유라시아 대륙을 종횡무진 오갔는데, 몽골제국의 영역에 속하지 않은 이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면서 통합된 세계 구축의 토대를 마련했다.

저자는 그러나 세계 정복이라는 개념은 칭기스 칸의 아들 우구데이 때 생겨난 것으로 본다. 칭기스 칸의 목표는 정주문화를 지배하는 것보다 외부의 위협에서 몽골리아를 보호하려는 쪽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우구데이는 재위 기간 동안 금괴와 은괴, 직물에 이르는 사치품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와 곡물창고와 이를 관리할 부처를 만들고 역참제도인 얌을 창설, 제국을 효율적으로 연결시키는 한편, 주요도로를 일상적으로 왕래하는 순찰대를 확대, 교역료의 안전을 확보했다.

몽골제국은 무기와 전술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휘어진 칼은 중동전역과 전세계 기병대의 선호 무기가 됐다. 몽골의 종교적 관용 역시 당시 세계관에서 벗어났는데, 이들은 하늘로부터 세계정복의 명을 받았다는 텡게리즘으로 모든 신성개념을 교묘하게 흡수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몽골의 영향은 칭기스 칸이 죽고 제국이 분열한 이후에도 수십년 혹은 수 세기 계속됐지만 몽골족이 세계주의를 선도했는가엔 신중한 입장을 취한다. 그런 조건을 만드는 촉진자 역할을 했지만 ‘칭기스의 교환’은 대부분 몽골족에 복속한 사람들과 외부에 있던 사람들의 노력으로 생겨난 결과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몽골에 대한 연구가 주로 동서문명의 교류 측면이나 인류학, 지리학 등 인접학문을 통해 진행돼온 데서 벗어나 몽골의 전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칭기스의 교환/티모시 메이 지음, 권용철 옮김/사계절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