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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벼랑끝에 선 자동차 부품업계, 우선 살리고 봐야

“손 털게 되서 차라리 속 편할지도 모르죠. 정작 죽을 맛인 건 (도산할 수도 있는 상급 벤더에) 말도 못 꺼내는 3~4차 협력업체들입니다.”

사업포기를 선언했다 당분간 공급을 재개하기로 한 자동차 부품업체 명보산업을 두고 다른 업체 대표가 한 말이다. 지난달부터 자동차 부품업체들 사이선 ‘엑시트’ 방법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았다는 말도 전해졌다. 투자회수로서 엑시트가 아니라 더 이상 운영하기 어려워진 회사를 팔고 나오는, 말 그대로의 ‘탈출’이다.

자동차 부품산업 위기의 배경에는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급감이 있다. 감염병은 사람들의 행동 반경을 집 안으로만 묶어놨다. 이동수단인 자동차는 생산도 소비도 하루 아침에 절벽을 맞닥뜨렸다. 수요 절벽 앞에서 ‘약한 고리’인 영세 부품업체들부터 끊겨 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중소기업들에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대책은 현장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금융권은 부품사들에 대해 신용도, 특정업체에 대한 의존도, 최근 3년간의 손익구조 등을 문제 삼았다. 신규 투자로 인해 잠시 손익구조가 나빠진 경우라도 예외가 없었다. 업계에서는 “올 하반기 코로나19가 대유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은행들이 자동차 부품업체들에 대해 문턱을 더 높였다. 더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비단 코로나19 뿐만이 아니었다. 30~40년 동안 완성차 업체와 함께 성장해온 업체들이 불과 몇 개월의 수요절벽에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배경은 따로 있었다. 한 업체 대표는 “부품업체들은 대부분 마진이 박하다. 물량으로 버텨왔는데 물량이 끊기면 당장 밥줄이 끊기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 19일 자동차 부품업체들에 대해 보증·대출·만기연장 등으로 ‘2조원+α’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급한 불 끄기도 중요하지만, 위기의 근본 원인을 찾아내서 해결하는 것도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한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감당해 온 이런 거래관행은 과연 합리적일까. 자산 건전성에만 치우쳐 위기 때 문턱을 더 높이는 은행의 역설은 당연한 것일까.

특정업체와의 거래비중이 높다고 대출이 거절되는 금융관행을 보노라면, 유동성 공급이란 금융 본연의 역할에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국내에 완성차 업체라고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 뿐 아니던가. 해외 굴지의 완성차 업체들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자체 부품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수출로 거래처를 다변화 하는 작업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벼랑 끝에 선 부품업체들에 우선 생존줄을 내려줘야 한다. 이후 벼랑 끝까지 내몰리게 된 사정을 살펴봐야 한다. 자동차산업은 1, 2, 3, 4차 등 수많은 업체가 맞물려 있고 고용유발효과가 크다. 이 같은 기간산업에 대한 지원이 위기 때 대출 내어주는 정도에 그친다면 국내에서 벤츠와 보쉬, 도요타와 덴소같은 상생 사례는 탄생하기 어렵다. 은행이 경제의 젖줄이라면 영세 부품사들이 마냥 망가지도록 내버려둬선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의 미래이기도 한 것이기에 말이다.

도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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