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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령 길수록 길어지는 머리카락…욕구불만의 길이만큼 ‘억압된 자유’
영국 주택가 불법영업 비밀장소 찾아가고…집에서 자르는 ‘DIY 이발’ SNS 공유
코로나 소강에 미용실 하나둘 재개…미국인들, 대륙횡단 ‘열정의 행보’도

“그리스의 페이디피데스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쟁 승리를 알리기 위해 30㎞를 달렸다. 2020년, 이제 사람들은 머리를 자르기 위해 대륙 횡단의 신화를 쓰고 있다.”(미 인터넷매체 복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 곳곳에서 때 아닌 ‘이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바이러스 전염 확산을 막기 위해 다수의 국가가 영업중단을 결정한 비필수사업장에 미용실과 이발소가 포함되면서다. 많은 이가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발이야 말로 수세기동안 인류가 ‘아웃소싱’에 의존해온 대표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봉쇄령과 함께 길어지는 머리카락은 ‘이발’에 대한 숨겨온 인류의 ‘욕구’를 폭발시켰다. 수 달에 걸쳐 이어진 봉쇄령 기간동안 누군가는 이발을 포기했고, 누군가는 집에서 스스로 머리를 잘랐고, 누군가는 불법 영업을 하는 점포를 찾아나섰다. 그리고 서서히 코로나19가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미용실과 이발소가 하나둘씩 문을 열자, 일부 사람들은 이발을 위해 ‘대륙횡단’을 감수하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1000㎞ 여정도 감수…‘이발’ 열정 깨운 코로나19

최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다른 주보다 먼저 미용실과 이발소가 영업을 재개한 캘리포니아 유바와 셔터 카운티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 중에는 이발을 하기 위해서 무려 600마일(약 965㎞)을 여행한 이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복스는 이발을 위한 미국인들의 ‘러쉬’를 빗대 “역사상 많은 사람이 먹을 곳과 기도할 곳, 사랑할 곳을 찾아서 먼 거리를 횡단하는 역사를 남겨왔다”면서 “다시 한번 엄청난 역사가 생겨나고 있다”고 표현했다.

내달 4일 미용실과 이발소 영업이 재개되는 영국에서는 ‘불법 이발 시술’이 성행하고 있다. 이발 욕구를 참지 못한 사람들의 수요와 영업 중단으로 생활고에 맞딱뜨린 이발사들의 공급이 만나면서다. 영국은 지난 3월 23일 비필수사업장의 영업을 중단시켰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공식적으로는 아무도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지만, 신문으로 창문을 가린 주택가에 비밀스러운 이발소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면서 “생각보다 많은 미용사들이, 예상보다 많은 고객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이 불법 시술소를 찾고 있으며, 한 미용사는 “남성이 머리 유지 보수를 더 자주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신 잇몸, 미용 가위 대신 주방 가위

머리카락을 자르고자 하는 열정은 ‘DIY(Do-It-Yourself) 이발’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도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당분간 만날 수 없는’ 전문가 대신 자신의 손에 머리카락을 맡기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는 주방 가위로 자신의 머리를 자르는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봉쇄이발(Lockdownhaircut)’이란 해시태그와 함께 결과물을 공유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성공 여부는 제각각으로, 처참해진 실패작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트렌드(?)에 맞춰 CNN과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언론들은 시청자에게 집에서 머리를 자르는 법을 알려주는 강의 영상을 만들어올렸다.

셀프 이발의 뜻밖의 인기는 미용제품 판매율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리서치업체 닐슨에 따르면 3월 초 이후 12주 동안 미국에서 온라인에서 판매된 헤어 염색 제품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판매액이 5000만달러에서 1억2800만달러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헤어 스타일링 아이템과 남성용 헤어제품의 판매도 각각 20%, 53%나 증가했다. 일반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에서의 의류 판매가 2월 이후 89%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왜 지금 이발인가

많은 매체가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의 이발 욕구를 조명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라는 머리카락의 특성상, 봉쇄령이 길어질수록 머리는 자란다. 그리고 자란 머리는 곧 얼마나 코로나19로 시민의 ‘자유’가 제한됐는 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때문에 매체들은 폭발하는 이발에 대한 수요는 곧 강제로 제한되고 있는 자유에 대한 ‘갈망’의 발로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즉, 사람들에게 이발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미용 목적 이상으로 일상이 정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상징적 행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발이나 멋진 손톱에 대한 집단의 욕구는 그리 놀랍지 않다”면서 “집단이 사회적 트라우마를 겪은 후 다시 미용실과 이발소로 돌아가는 것은 정상 상태로 돌아가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발 전쟁의 이면에는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것과 더불어 ‘자기 표현’의 수단의 상실로 인한 불만도 내재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머리를 손질하는 것은 단순히 외모를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더 나아가 공동체의 성격과 깊게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실제 고대부터 오랜 시간동안 머리스타일은 개인의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중세 시대에 상류층 남성 사이에서 가발이 유행한 것이 대표적이다.

복스는 “코로나19는 머리를 깎는다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준다”면서 “머리카락은 우리의 정체성의 연장선상에 있고, 심지어 몇몇은 헤어 스타일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혜택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헤어스타일, 저항의 상징이 되다

한편 봉쇄령 기간동안 이발은 정부의 봉쇄령 조치에 반발하는 ‘저항’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미국 미시간주와 코네티컷, 그리고 이탈리아 등에서는 이발사와 미용사가 거리로 나와 정부의 ‘폭정’에 항의하면서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후 집단 이발 퍼포먼스는 봉쇄령을 반대하는 상징적 행위로 자리잡았다.

헤어 스타일이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60년대 말,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 개최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 운동이 일어났을 당시, 운동가들은 여성의 외모를 상품화하는 도구의 상징으로 펌롤과 가발을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지난해에는 미국 뉴저지주에서 레슬링 경기 전 백인 심판이 흑인 선수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영상이 공개, 인종차별 논란의 불을 지폈다. 올 초에는 텍사스의 한 고등학교에서 레게 머리를 자르지 않은 학생에게 졸업식 행진을 불허해 논란이 됐다. 이후 지난해 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뉴욕과 뉴저지, 그리고 지난 3월 버지니아에서 헤어스타일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미용실·이발소 영업재개…감염 재확산 우려 여전

많은 국가가 경제활동 재개에 나서면서 문을 닫았던 미용실과 이발소도 다시 영업을 시작하고 있다. 서비스 제공자와 손님이 가까운 거리를 유지해야하고 일부 신체 접촉이 불가피한 미용 서비스의 특성상, 미용실과 이발소가 경제 정상화 이후 새로운 ‘감염 허브’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경계의 시각도 많다.

정부도 미용 서비스 제공 시에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등을 필수화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일례로 지난달 11일 영업재개를 시작한 프랑스에서는 미용 서비스를 받기를 원하는 고객은 무조건 예약을 해야 하고, 미용실이나 이발소에 방문한 후에도 서비스를 받기 전까지는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엄격한 조건을 제시했다.

관리를 받는 동안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잡지를 읽거나 음료를 마시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미용사, 이발사는 4시간마다 착용하는 마스크를 교체해야 한다. 홍콩는 방문 고객이 최근 여행과 확진자 접촉 여부를 묻는 설문지를 작성하고, 체온을 필수적으로 측정토록 하고 있다. 손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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