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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과학칼럼] 세계무역과 ‘측정표준’

춘추전국시대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가장 먼저 도량형 제도를 정비했다. 나라의 기준으로 삼을 자와 저울, 되를 대량으로 만들어 백성들에게 나눠주어 지역마다 제각각이던 도량형을 하나로 통일시킨 것이다. 이를 통해 진시황은 조세를 공평하게 거둬들일 수 있었다. 건축, 제조, 상거래 등 일상 속 갖가지 활동들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도 도량형의 통일은 매우 중요했다.

프랑스 혁명기에도 도량형의 통일에 대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고 국경을 넘어 상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측정단위 통일의 필요성은 국가를 넘어 국제적인 수준으로 확대됐다.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앙투안 라부아지에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의 노력의 결실로 1875년 5월 20일, 17개국 대표가 프랑스 파리에 모여 ‘미터협약’을 체결했다. 세계 최초 다자 간 협약인 미터협약을 계기로 길이, 질량 등의 측정단위를 전 세계적으로 통일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과학기술과 세계 무역의 발전이 가속화될 수 있었다.

미터협약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5월 20일을 ‘세계측정의 날’로 정해 세계 많은 나라가 함께 축하하고 있다.

올해 세계측정의 날 주제는 ‘세계 무역을 견인하는 측정표준’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국경의 문이 닫히는 초유의 상황이지만 생활 및 산업 전반에 필요한 물품, 천연자원 등의 수출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비대면, 원격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국제무역에서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신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이 신뢰는 바로 정확하고 정밀한 측정표준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는 일본,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천연가스 수입국으로 연간 수입액만 20조에서 30조원에 달한다. 천연가스를 수입할 때는 부피당 발열량을 측정해 가격을 책정하는데, 이 때 천연가스의 정확한 조성을 알지 못하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 조성에서 1 %의 오차가 발생하면 연간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의 손해가 발생한다. 측정표준 능력이 국가 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것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는 세계 1, 2위 수준의 정확도를 가진 천연가스 인증표준물질을 생산, 보급하여 천연가스에 수입에 기여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에 불거진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반도체 생산 공정에 필수적인 고순도(99.999999%) 불화수소 수급이 국가적인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을 위해서는 생산된 불화수소의 순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정밀 측정기술이 필요하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불화수소 정밀측정기술을 산업계에 보급하기 위해 고순도 불화수소 표준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반도체 및 첨단소재의 신뢰성 평가, 측정분석장비의 국산화를 위한 원천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무역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상품과 서비스의 안전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정확한 측정은 상품 및 서비스의 안전성, 판매자 간의 상호 신뢰성과 직결되기에 측정표준은 국제무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정밀측정기술 개발로 우리나라 측정표준 능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이고, 이를 세계 여러 나라와 상호 비교를 통해 동등성을 확보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앞장서고 있다.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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