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태평양 안보 전략 차원서 검토 필요”
협의 중단 방위비협상엔 “종합 판단 사안”
美中 패권전쟁 격화…韓 ‘외교 압박’ 우려
22일 미국 정부 관계자가 미국의 반(反)중국 경제동맹 한국 참여 제안과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안보’ 문제로 연계시킬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 정부가 두 사안을 두고 우리 정부와 협상하면서 상호 연계된 압박 카드로 쓸 수 있다는 얘기다.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 정부의 부담이 더 커지는 양상이다.
22일 미국 국무부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한국 정부에 대한 미국 국무부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 가입 제안과 관련한 질문에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평화와 안보를 함께 하는 중요 동맹국”이라며 “미국의 EPN 참여 제안은 경제 문제가 아닌 안보 문제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앞서 키이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은 전날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자들과 전화간담회에서 “미국과 한국 같은 국가들을 통합하기 위한 EPN 구상을 한국과 논의했다”며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개최한 고위급 경제협의회 등을 계기로 한국에 EPN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무부 관계자는 “크라크 차관도 브리핑에서 화웨이 문제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동맹국과의 외교, 안보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었다”며 “우리는 동맹국과 믿을 수 없는 5G 공급사인 화웨이, ZTE 장비를 통해 외교적 논의를 진행할 수 없다. 동맹 사이의 민감한 외교적 사안이 유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가운데 5개월째 협정 공백 사태를 빚고 있는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협상 상황에 대한 질문에 이 관계자는 “SMA 협상 역시 안보 문제로 종합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라고 설명하며 “미국은 동맹인 한국과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의지를 갖고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두 사안을 모두 ‘안보 문제’로 규정하며 양국 고위급 대화에서 이를 연계할 가능성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서 크라크 차관은 브리핑에서 “한국은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주요 동맹국”이라고 강조하며 “우리의 모든 동맹과 파트너들의 외교 시설에는 ‘5G 클린 패스’가 요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5G 클린 패스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화웨이 등 보안 이슈가 있는 장비를 제외하는 통신 환경으로, 사실상 중국의 글로벌 공급망을 고립시키겠다는 의도가 반영됐다.
미국 측의 제안을 받은 우리 정부는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대로 EPN에 참여할 경우, 중국과의 협력 관계에 상당한 악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미국 측의 제안을 받은 것은 맞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공유된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EPN) 참여 가능성을 체크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안보 동맹’을 내세우며 중국 견제에 참여할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며 외교가에서는 중국 역시 한국에 대한 외교적 압박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던 미중 경쟁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며 한국에 대한 중국의 압박도 심해질 것”이라며 “당장 EPN 참여 문제를 두고 중국 측이 한국에 여러 채널을 통해 강한 불만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유오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