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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옷 2만벌 창고에 산더미…“파산으로 땡처리 넘쳐나”
재고처리 전문업체 작업 현장 따라가보니
일평균 옷 1만~2만벌 매입…코로나 이후 문의 쇄도
재고 매입량 늘었지만…해외 거래 뜸해지며 매출 줄어
13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건물 지하. 재고처리 전문업체가 옷 2만벌이 담긴 큰 봉투 180여개를 수거하고 있다. 김빛나 기자/binna@heraldcorp.com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김빛나 기자] 13일 오후 1시,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건물 지하. 옷으로 꽉 채워진 큰 봉투 180여개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3명의 남성이 큰 봉투 더미를 헤집고 들어와 일사불란하게 작업을 시작한다. 옷을 토해낼 듯 입을 벌리고 있는 봉투를 한 번, 두 번 묶고 다시 테이프로 동여맨다. 1시간이 지나자 쌀 포대처럼 단단하게 포장된 봉투 더미가 차곡차곡 쌓여 산봉우리를 만들었다. 이날 포장된 옷은 2만벌, 무게만 3600㎏에 이른다.

오후 2시20분, 건물 앞에는 옷을 싣고 가기 위한 2t 트럭 두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3명의 남성은 각각 지하와 계단, 건물 입구를 맡아 구호물품을 배급하듯 봉투를 손에서 손으로 건네기 시작했다. 묵직한 봉투가 트럭에 실릴 때마다 둔탁한 마찰음이 났다. 30분 채 지나지 않아 트럭은 제 몸집보다 큰 봉투 더미를 등에 이고 있었다. 트럭은 ‘출발하라’는 신호가 떨어지자 천천히 시야에서 멀어졌다.

13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재고처리 전문업체가 옷 2만벌의 재고를 옮기기 위해 트럭에 싣고 있다. 김빛나 기자/binna@heraldcorp.com

트럭이 싣고 간 옷 더미는 파산한 의류업체가 남긴 재고다. 15년 동안 동대문에서 여성의류매장 5곳을 운영해온 사업주 김민주(가명) 씨는 지난 3월 사업을 접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갑작스럽게 문을 닫았다. 김씨는 미처 팔지 못한 옷을 재고처리 전문업체 ‘제이에스컴퍼니’에 넘겼다. 재고처리 전문업체는 의류업체로부터 재고를 대량으로 매입해 재판매하는 역할을 한다.

재고처리 전문업체는 의류 생애주기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개입한다. 의류업체가 생산한 신상품은 1차 시장(백화점·대형 마트·대리점)에서 판매되다 2차 시장(아웃렛·홈쇼핑·온라인몰)으로 넘어간다. 2차 시장에서도 소진되지 않은 상품은 재고처리 전문업체를 통해 제3국으로 수출되거나 덤핑 판매된다. 표지성(40) 제이에스컴퍼니 대표는 “매입한 재고의 10%는 국내 시장에 유통되고 90%는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 수출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재고처리 전문업체는 부쩍 바빠졌다.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안 팔리는 옷이 늘자 재고를 처리하려는 의류업체가 늘어서다. 아예 의류업체가 파산하면서 대량으로 재고를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표 대표는 “최근 재고 매입 요청을 하는 의류업체 수가 전보다 2배 늘었다”며 “코로나 이전에는 하루평균 문의 건수가 30건이었다면 이제는 50건”이라고 말했다. 이날도 문의전화가 수시로 쏟아졌다.

재고처리 전문업체 제이에스컴퍼니의 보관 창고에 매입한 재고가 가득 쌓여있다. [사진 제공=제이에스컴퍼니]

표 대표는 매입하는 재고가 많아지자 보관창고를 추가로 구했다. 서울 도봉구, 경기 파주시와 시흥시 등 총 6곳에 사무실 겸 보관창고를 운영하고 있다. 표씨가 하루 매입하는 재고 의류는 1만벌에서 최대 2만벌이다. 서울 동대문 패션타운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를 돌며 각종 재고를 수거한다. 사들이는 재고의 90%는 의류, 나머지 10%는 신발·가방·파우치 등 패션잡화다.

매입 재고가 늘었다고 매출까지 증가한 것은 아니다. 표 대표는 “지난해보다 바빠졌지만 매출은 오히려 30~40% 줄었다”고 말했다. 표 대표는 매입한 재고의 90%를 베트남에 수출해 수익을 내고 있는데, 코로나19로 경영환경이 어려워진 베트남 의류업체들이 거래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표 대표는 “매입한 재고는 넘쳐나지만 이를 사려는 의류업체가 줄어 매출이 감소했다”며 “물건 회전이 빨라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전망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표 대표는 “의류업체는 물론 재고처리업체도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아 소비가 줄어든 데다 주요 거래처인 중국·동남아를 오가는 물류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어서다. 표 대표는 “올 하반기에는 어려워지는 의류업체가 늘면서 하루평균 문의 건수가 50%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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