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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홀대받던 B급 과일, ‘라이징 스타’ 된 이유는…?
불경기·TV 노출 덕분에 인기 ↑
B급 인기에 소매상들 고민 늘어
11일 새벽 2시께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내 과일 경매장에서 경매가 한참 진행 중이다. [사진=김빛나 기자]
11일 새벽 1시께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내 과일 경매장에서 한 상인이 과일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빛나 기자]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지난 11일 새벽 2시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내 과일 경매장. 경매대 주변으로 30여 명의 상인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상인들 손에는 계산기처럼 생긴 리모컨이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첫 품목은 딸기. 경매가 시작되자 경매대 위 전광판에 상품 가격과 판매자 번호가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상인들의 손도 덩달아 빨라졌다. 남들보다 먼저 가격과 판매자 번호를 누르기 위해서다. 중간중간 경매 종료를 알리는 경매사의 목소리 덕분에 분위기는 더 뜨거워졌다.

이날 판매된 딸기 한 상자 가격은 대부분 1만원대 후반에서. 2만원대 초반. 와중에 6000원, 7000원인 상품도 눈에 띄었다. 일반 제품보다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B급 상품이다. 하지만 B급 상품도 다른 상품과 비슷하게 3초 만에 경매가 종료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과일 경매사 A씨는 “B급 상품이라도 특별히 안 팔리거나 하지 않는다”며 “B급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계속 그것만 구매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외면받는 B급? 잘 나갑니다

한 시장에서 판매 중인 과일들. [사진제공=연합뉴스]

사실 B급·못난이 상품 판매 자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전국 각지에서 농수산물이 모이는 가락시장은 특A급부터 B, C 등급 상품까지 폭넓게 취급해왔다. 김용흠 서울청과 경매사는 “사람이 못 먹는 수준을 제외하고 다양한 상품군이 도매시장에 몰린다”며 “B급 상품의 경우 일반 상품 가격의 30% 수준에 판매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그 수요가 더 늘었다. 장기간 이어진 경기침체에 코로나19의 영향까지 오버랩되며 100원이라도 싼 농산물을 찾는 등 소비자들이 가격에 예민해졌다. 망원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B 농산물 사장은 “불경기라 그런지 일단 싸면 사는 분들이 많다”며 “개수로 따지면 채소 하나에 200원~300원 차이인데도 싼 걸 구매하러 간다”고 말했다. 지갑이 얇아지자 가격이 저렴한 B급 상품에 소비자들이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TV 프로그램에 노출되면서 거부감이 줄어든 탓도 있다. 지난달 23일 SBS 예능 프로그램 ‘맛남의 광장’에서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에게 해남 못난이 왕고구마 판매 지원을 부탁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이마트·SSG닷컴 등 신세계 계열사를 통해 방송 후 일주일 만에 고구마 300톤이 완판됐다. 지난 3월 B급·못난이 상품을 구매한 김주혜(27·가명) 씨는 “큰 차이 없다길래 감자 한 상자를 구매했다”며 “백종원 유튜브 보면서 감자 요리도 몇 번 만들어봤는데 맛도 괜찮았다”고 말했다.

B급 가격 메리트에…다른 가게도 고심
8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손님들이 과일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빛나 기자]

상황이 이렇다 보니 B급 상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과일·채소 가게도 등장했다. 지난 8일 망원시장에서 만난 C 과일 가게 사장은 직접 가게 위치를 알려주며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가게들이 3곳 정도 생겼다”며 “B급·못난이 과일을 싸게 가져와서 싸게 파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가게의 과일·채소 가격은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일반 소매가보다 적게는 2배, 많게는 7배까지 차이가 났다. 한 가게에서는 오이가 200원, 오렌지가 300원, 가지가 1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수산가격정보(KAMIS)에 따르면 8일 기준 서울지역의 오이 소매가는 개당 680원, 오렌지 소매가는 개당 852원이다. 같은 지역구 대형마트인 공덕 이마트에서 가지는 2개 1580원으로 개당 79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인근 가게 사장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A급 과일을 판매하면 가격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B 농산물 사장은 “좋은 제품 가져오려면 그만큼 도매가를 줘야 하는데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고 B급 가져오는 건 싫어 마진을 줄여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C 과일 가게 사장도 “농가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B급 판매는 좋을 수 있지만 가게 사장 입장에선 정말 죽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소비자들은 상품 질을 고려하더라도 가격 메리트가 크다는 입장이다. 망원동에 거주하는 김윤덕(77·가명)씨는 “상대적으로 질 낮은 상품을 취급한다는 걸 알지만 싼 맛에 한 번씩 들른다”며 “가지가 100원이라길래 샀다”고 했다. 망원동에 거주하는 안점례(78)씨는 “동네 주민들 선호도가 높은 편”며 “가격이 확연히 차이 나니 자연스레 찾아가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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