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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설임 없이 ‘빚’ 내는 전 세계…‘포스트 코로나’ 해결책 될 수 있을까?
美·EU 등 전 세계 국가, 경기 부양 위해 대규모 정부 지출
IMF “올해 선진국 부채, GDP 122%인 66조달러”
‘제로 금리’·‘부채의 화폐화’ 공식화로 신규 부채 부담 줄어
장기적 재정 지출 확대…추가 세수 확보 실패·신용도 하락시 위기
안전자산無 신흥국 등 재정취약국 재정 위기 가속화 가능성↑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한 거리 표지판이 지난달 29일 현재 시점의 미국 국가 부채 규모를 보여주고 있다. [AP]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지금 우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부채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들여다볼 것이지만, 지금은 미국 기업과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록다운(Lockdown, 봉쇄)’은 대공황 수준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위기를 불러왔다.

슈퍼 파워로 불리는 미 재무장관의 입에서도 경제 회생을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붓는 것이 우선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웬만한 경제 위기에도 ‘정부 재정의 건전성’을 외치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찾아보기 어렵다. 미래의 부를 끌어다 지금의 경제 붕괴 상황을 막는 것 말고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코로나19에 맞서) 공공 부분의 역할 증대를 통해 1단계 ‘전쟁’, 2단계 ‘전후 복구’에 대한 대응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지금 벌이고 있는 ‘빚 잔치'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수의 연구들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막대한 규모의 부채는 경제 기반이 상대적으로 허약한 신흥국은 물론, 선진국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말처럼 ‘공짜 점심’은 없기 때문이다.

▶현실화 하는 역성장…돈 풀어 급한 불부터 끈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들은 앞다퉈 막대한 재정 지출이 동반되는 각종 경제 부양책을 쏟아내고 있다.

우선 미 의회는 경기 부양을 위해 각각 83억달러(약 10조원), 1000억달러(약 122조원)의 긴급 예산을 편성한 데 이어 2조2000억달러(약 2682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 패키지를 승인했다. 또 지난달 23일에는 추가로 4840억달러(약 590조원) 규모의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네 차례 예산을 합하면 49일 만에 3조달러(약 3677조원)에 가까운 천문학적 수준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2020 회계연도 연방 예산 4조7900억달러와 비교해도 어마어마하다.

유럽연합(EU) 역시 27개 회원국 정상회의를 통해 5400억유로(약 717조원) 규모의 경제 대응책 가동을 승인했다. 약 1조~1조5000억유로 규모의 투자금이 필요한 경제회생기금도 설치할 예정이다.

전 세계가 앞다퉈 돈을 풀면서 각국 정부들의 올해 재정 적자 규모도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선진국들의 국가 부채 규모는 이들 국가 국내총생산(GDP) 규모의 122%인 66조달러(약 8454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천문학적 규모의 국가 부채 발생에도 각국 정부들은 ‘균형 재정’을 추구하기보단, 더 많은 돈을 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당장 보이는 각종 경제 수치가 사상 최악의 수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주요 국가별 경제성장률(2019~2021년) [IMF]

미국의 지난 1분기 GDP 증가율은 -4.8%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4년 1분기 -1.1%를 기록한 이후 첫 마이너스 성장이며, -8.4%를 기록한 2008년 4분기 이후 최악의 성장률이다. 2분기 전망은 더 암울하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2분기 GDP 증가율을 -34%로, JP모건은 -40%로 각각 전망했다.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EU 통계 기구인 유로스타트(Eurostat) 역시 유로존의 1분기 경제가 전 분기 대비 4.8%, 전년 동기 대비 14.4% 위축됐다고 발표했다. 유로존 경제가 올해 5~12% 위축될 수 있으며, 2분기엔 15%까지 역성장할 수 있다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전망은 더 암울하다.

각국 경제를 주관하는 주요 인물들은 부채 문제보단 당장의 경제 침체에 대응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수차례 밝히고 있다.

▶저금리로 이자 부담↓…돈 찍어 빚 갚기까지= 사실 최근 수년간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가 부채의 증가로 인한 국가 신용 문제 등을 경고하며 재정 축소에 나서왔다. 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이런 흐름을 일순간에 바꿔 놓았다.

이처럼 전 세계 국가들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 데는 ‘초저금리’가 큰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실상 ‘제로(zero) 금리’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지며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대규모 부채에도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의 분석에 따르면 오는 2025년 GDP 대비 미국 정부의 부채 비율이 89%였을 때 이자 비용은 전체 미국 GDP의 2% 수준이 될 것으로 20년 전 예상됐었다. 하지만, 현재의 저금리 상태에서는 107%라고 해도 이자비용이 동일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부채 규모는 늘었지만 이자 비용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몰리며 국채 가격이 오히려 오르는 상황”이라며 “국가 빚이 늘면 채무불이행(디폴트)를 걱정하는 일반적인 상황과 정반대의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부채비율이 GDP 대비 237%에 이르는 일본은 물론 한 때 디폴트 위험에 빠졌던 유럽 국가들이 빚을 더 늘려가는 것도 이와 비슷한 논리다.

중요한 것은 당분간 초저금리는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2023년 후반부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Fed의 조치에 의해 다른 국가들도 최소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부담도 없다 보니, 전 세계 국가들이 저금리 시대를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국가 부채 시계’ 앞을 한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국가 부채 시계는 수시로 변화하는 국가 부채 규모를 한 눈에 보여준다. [로이터]

여기에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돈을 찍어내 부채를 해결하는 ‘부채의 화폐화’를 공식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면서, 각국 정부가 향후 지속적으로 대규모 부채 규모를 유지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앙은행들은 그동안의 금기를 깨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은행들의 은행’, ‘인플레이션 조정자’란 기존 역할을 넘어 기업, 지방 자치단체의 부채까지 떠안는 등 역할을 광범위하게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Fed는 5000억달러(약 611조원) 규모의 ‘지방정부 유동성 기구(MLF)’를 통해 지방채 매입 대상을 확대하며 지자체 파산을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 중이다. 회사채는 물론 정크본드, 부채담보부채권(CLO)까지도 사들이는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이 결과 Fed의 보유 자산은 지난달 20일 기준 6조5731억달러(약 8038조원)로 7주 만에 54%나 증가했다. 올 연말까지는 8조~11조달러(약 9782조~1경3451조원)까지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다.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이르는 규모다.

일본은행 역시 국채 연간 매입 한도를 폐지하고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매입 한도를 7조4000억엔(약 86조원)에서 20조엔(약 230조원)으로 대폭 높였다.

최근 7500억유로(1032조원) 규모의 양적완화를 발표한 유럽중앙은행 역시 정크본드까지도 대출 담보로 인정하기로 하는 등 대대적인 돈 풀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달콤한 빚 잔치…장기적으론 불황 초래할 수도= 다만, 장기적인 재정 지출 확대에 대해 경고하는 목소리도 많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정부 차입 증대처럼 많은 유언비어와 논란을 만들어내는 정책은 거의 없다”며 “경제 침체가 장기화 할수록 막대한 규모의 부채를 관리하는 것은 향후 수십 년간 전 세계 정부에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 산하 경제 연구소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도 보고서를 통해 “전례 없던 위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채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라들의 선택지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2019년과 비교했을 때 각 연도별 GDP 대비 정부 지출 증가 비율 예상치 [국제통화기금(IMF)]

특히, 이탈리아와 스페인처럼 부채가 많은 선진국들이 문제가 되면 더 많은 시장으로도 부채 위기가 전염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추가 세금을 통해 재정 수익을 올리는 것도 어려워지고, 장기적으론 국가 신용도가 떨어진 국가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요가 급감하는 ‘부채 절벽’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가테 데마라이스 EIU 글로벌 예측 국장은 “남유럽의 많은 지역이 여전히 높은 부채, 재정 적자, 고령화 인구로 위험에 처해 있다”고 언급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안전 자산도 없는 데다 기축통화국조차 아닌 신흥국, 재정취약국들의 어려움은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신흥국 시장 국가들의 GDP 대비 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9.1%까지 증가하고, 저소득 국가들의 경우에도 -5.7%까지 확대될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지난달 16일 기준 IMF에 도움을 요청한 나라가 100개국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중앙은행의 전방위적 시장 개입으로 인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워드 마크스 오크트리캐피털 설립자는 “파산 없는 자본주의는 지옥 없는 가톨릭교와 같다”고 비꼬았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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