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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 조심하라고 기도했는데, 남에게 폐 한번 안 끼친 우리 아들이 왜…”
충북 음성서 택시 타고 온 어머니
출근차 아들이 탄 車 붙잡고 눈물
이천 화재 참사 ‘피해가족 휴게실’
‘희생’ 확인되자 금세 눈물바다로
사망자 38명 중 29명 ‘신원 확인’
지난 29일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기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30일 오전 경찰, 소방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천)=주소현 기자] “늘 조심하라고 기도했는데, 남에게 폐 한 번 안 끼친 우리 아들이 왜….” 지난 29일 오후 10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경기 이천시 모가면 A물류창고 화재 참사 현장 인근 모가실내체육관. 이름을 끝내 밝히기 거부한 한 피해자의 어머니는 겨우 대화를 이어 가다 결국 체육관 밖으로 나와 흰색 승용차에 기대어 흐느꼈다. ‘종교’에 의존하려는 듯 울음을 참아 가며 연신 “주여”만 외쳤다.

이 체육관에는 이천시 재난대책본부가 준비한 ‘피해 가족 휴게실’이 설치돼 있었다. 이 어머니를 비롯, 휴게실을 찾은 피해자의 가족들은 A물류창고 공사에 투입된 근로자들의 생사를 물은 뒤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하자 모두 망연자실했다. 이들은 연락이 끊긴 근로자와 본인의 관계, 연락처 등을 적으며 연방 이천시 직원들에게 “우리 ○○이 여기(현장)에서 일한 게 맞느냐”며 계속 따지듯 물었다.

▶출근 위해 아들이 타고 온 차에 기대어 흐느낀 어머니=‘음성에서 온 어머니’도 ‘피해 가족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도 급하게 한 공무원에게 자신의 인적사항, 연락처 등을 남겼다. 어머니는 조금 정신을 차린듯 아들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그는 “30대인 아들이 여기서 일한다. (나는)음성에 산다. 아들도 음성에서 출퇴근한다”고 했다.

어머니가 흰색 승용차를 부여잡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그 차를 가리키며 “이 차가 아들 차다. 이 차를 타고 음성에서 이천으로 출퇴근했다”면서 “(아들이)피했다면 차 있는 데로 도망쳤을 텐데, 피하지도 못했나 보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가족들이 다 일하니 불이 난 줄도 몰랐는데 시어머니가 ‘□□이 일하는 데에서 불난 것 같은데’ 하셔서 그때야 알고 택시 타고 왔다. 남편은 먼저 (현장에)올라왔고”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아들이)위험한 것을 알고 있었다. 이천에서는 2~3년에 한 번씩 큰 불이 난다고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들이 현장에서)일한 지는 1년이 다 돼 간다”면서 “파견 나온 거라 일하는 데가 그때그때 바뀌었다. (이번에는)사장이 좋다고 했는데”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체육관에 있던 다른 여성은 “오늘(29일) 공사장에 투입된 9개 업체 78명 명단에 오빠가 없다. 오후에 투입돼 없는 것이냐. 정확한 명단을 시에서 제시하라”고 요구하며 울먹였다. 또 다른 중년 부부는 서로 껴안은 채 “우리 아들 어떡해”하며 오열해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또 다른 피해자 가족들은 같은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겨우 화를 면한 동료 직원들에게 당시 상황을 묻고 현장을 함께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에 대해 따져 물었다.

같은 날 오후 11시까지 체육관에는 피해자 가족 40∼50명이 들어왔다. 이들은 “신원 확인을 서둘러 달라”며 권금섭 이천시 부시장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일부는 “신원을 직접 확인하겠다”며 사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찾았다가 헛걸음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들의 시신은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등 이천 지역 7개 병원 등에 분산 안치됐다. 상당수가 훼손 정도가 심해 육안으로는 신원 파악이 힘든 것으로 전해졌다.

음성에서 온 어머니가 힘든 사연을 털어놓은 지 1시간쯤 후인 같은 날 오후 11시30분께 김남완 이천시 홍보관광담당관이 현장 브리핑을 위해 유가족 앞에 섰다. 김 담당관은 “사상자 수(사망 38명·부상 10명)는 변동 없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화재 원인은 현재 경찰과 소방이 합동 조사 중으로, 내일(30일) 정밀 감식할 것이다. 원인과 진행 상황은 좀 더 조사해 말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불은 초기 진화는 됐지만, 밑에 묻혀 있는 잔불을 다 헤쳐 진화해야 해서 중장비를 동원했다”며 “실종자 수와 사망자 수 차이가 나중에 발생할 소지가 있어 밤새워 (인명 수색을)진행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어 권 부시장이 나와 “시공사 측에서 전달받은 출근자 명단을 유가족들에게 공개한다. 경찰에서 방금 신원이 확인된 15명에 대한 신원도 유족들에게 공개하겠다”며 “이천에서 화재로 인한 큰 인명피해가 나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설명했다.

사고 당시의 출근자 명단과 공개된 사망자들의 신원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유족들만 확인할 수 있도록 별도 공간에 게시됐다. 사고 희생자들의 신원이 일부 공개된 후 가족임을 확인한 일부 유가족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체육관은 이내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명단에 이름이 없는 유가족들 사이에서는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가족이 사망자 명단에 포함이 됐는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 없게 된 일부 유가족은 권 부시장을 붙잡고 “왜 이렇게 확인 절차가 더디냐”며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지난 29일 오후 불이 난 경기 이천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 설치된 상황판. 주소현 기자/addressh@heraldcorp.com

▶사망자 대부분 일용직…38명 중 29명 ‘신원 확인’=이번 참사로 인한 사망자는 최종 집계 결과 38명으로 확인됐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30일 오전 10시20분께 화재 현장에서 정밀 인명 수색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고 이날 밝혔다. 부상자도 10명(중상 8명·경상 2명)으로 집계됐다.

지문을 통한 신원 확인 결과 이날 낮 1시 현재 사망자 38명 중 29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이들은 대부분 전기·도장·설비 등의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인 것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9명은 시신 상태가 지문 확인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들의 유전자를 채취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했다.

국과수는 “이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대조 시료가 확보되는 대로 확인 작업을 벌여 48시간 이내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경찰에 답변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이날 신원 확인 작업이 완료될 가능성도 있다. 신원이 확인된 29명 중에는 중국인 1명, 카자흐스탄 2명 등 외국인 3명이 포함됐다. 성별은 모두 남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천시는 경찰이 사망자 신원을 확인하면 이를 통보받아 유족에게 연락, 피해 사실을 알리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지난 29일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는 모두 190여 명의 근로자가 작업하고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공사 현장에는 모두 3개 건물이 있는데 이 가운데 불이 난 B동에 근무하던 인원이 전기, 도장, 설비, 타설 등 분야별 9개 업체, 78명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일용직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체들의 보험 가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천시는 경기도 등과 협의해 피해자 지원 계획을 수립, 피해자들을 도울 예정이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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